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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포천의 ‘곳간’ 논쟁, 시민 삶은 어디에 있나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5.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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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시청 드론뷰.jpg


포천시장 선거 초반부터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을 둘러싼 공방이 뜨겁다. 국민의힘 백영현 후보 쪽은 “기금은 쌓아두기 위한 돈이 아니라 시민 삶과 지역경제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때 쓰라고 만든 제도”라고 말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윤국 후보 쪽은 “3년 만에 수천억 원대 비상금을 급격히 소진한 것은 적극 행정이 아니라 재정의 뿌리를 흔드는 행정”이라고 맞받는다. 겉으로 보면 ‘썼느냐, 남겼느냐’의 대결이다. 그러나 이 프레임만 따라가면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다. 재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 돈은 시민 다수의 삶을 실제로 바꾸는 데 쓰였는가.


선거철만 되면 지방재정은 곧잘 가계부 비유로 축소된다. 곳간을 잘 지킨 사람이 유능하고, 비상금을 꺼내 쓴 사람은 무책임한 것처럼 말해진다. 하지만 공공재정은 개인 가정의 저축과 다르다. 시민이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지방정부가 끝내 해야 할 일은, 필요할 때 재정을 동원해 삶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지역경제 침체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돈을 남겨뒀다”는 사실만으로 행정의 성과를 말할 수는 없다. 재정을 쓸 때 써야 한다는 백 후보 쪽 주장에는 그런 점에서 일정한 정당성이 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공재정의 핵심은 ‘썼다’가 아니라 ‘어떻게 썼느냐’에 있다. 도로를 놓고, 주차장을 만들고, 하천과 공원을 정비하고, 생활 불편을 해소하는 사업은 언뜻 모두 좋은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거 국면에서 이런 사업들은 너무 쉽게 ‘눈에 보이는 성과’로 포장된다. 정작 따져야 할 것은 다른 데 있다. 그 돈이 자영업자와 노동자, 돌봄 부담을 짊어진 가정, 교통과 주거 여건이 열악한 주민, 지역에서 버티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는가. 도시의 외형이 아니라 시민의 삶의 조건이 나아졌는가. 체감할 수 없는 개발과 정비는 결국 선거용 성과 전시를 벗어나기 어렵다.


박윤국 후보 쪽의 반론도 마찬가지로 검증돼야 한다. “우리는 위기 속에서도 재난지원금을 주면서 재정의 뿌리를 지켰다”는 주장은 분명 정치적으로 힘이 있다. 그러나 재정을 남겨두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 곳간을 지켰다면, 그 재정이 이후 포천의 구조적 위기를 풀기 위해 어떤 준비로 이어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인구 감소, 기업 위기, 민생 침체, 지역 활력 저하가 누적된 도시에서 재정 건전성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시민 삶을 지키기 위한 투자와 복지, 산업 전환, 지역 회복 전략으로 연결되지 않는 ‘건전성’은 결국 아무 것도 지키지 못한 숫자의 안정에 그칠 수 있다.


이번 논쟁에서 두 후보 쪽 모두 각자 유리한 진실만 붙들고 있다. 백 후보 쪽은 “필요할 때 쓴 돈”을 말하고, 박 후보 쪽은 “그래도 남겨야 할 돈”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포천 시민이 듣고 싶은 것은 이런 추상적 자기정당화가 아니다. 왜 그 많은 재정이 투입됐는데도 지역경제 회복을 실감하지 못하는지, 왜 인구 감소와 민생 침체의 흐름은 여전히 꺾이지 않는지, 앞으로 남은 재정 여력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 답이다. 선거가 정말 시민을 위한 경쟁이라면, 서로의 책임을 떠넘기는 대신 이 질문부터 받아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는 지방재정 논쟁의 방향 자체를 바꿔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토건형 효율’이 아니라 ‘생활 중심의 공공성’이다. 도로와 공원, 외형 정비가 전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재정의 우선순위가 지역 유지와 개발 논리, 보여주기식 사업에 쏠릴수록 정작 시민 다수의 일상은 주변으로 밀려난다. 아이를 키우는 비용, 노인의 이동과 돌봄, 청년의 일자리와 주거, 소상공인의 생존, 지역 공공서비스의 질 같은 문제야말로 지방정부가 가장 먼저 책임져야 할 영역이다. 재정안정화기금이 진짜 시민의 안전판이었다면, 그 사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도 당연히 누가 더 약한 시민의 삶을 지켰는가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포천의 이번 선거는 단지 백영현 대 박윤국의 대결이 아니다. 지방정치가 여전히 ‘누가 더 잘 관리했는가’라는 행정가 경쟁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누구의 삶을 더 우선할 것인가’라는 가치 경쟁으로 나아갈 것인지가 걸린 선거다. 재정을 아끼는 일은 미덕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절제가 시민의 고통을 방치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재정을 쓰는 일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과감함이 토건과 전시성 사업을 합리화하는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결국 시민이 묻고 판단해야 할 기준은 분명하다. 그 돈이 권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쓰였는가, 아니면 삶이 더 위태로운 사람들을 위해 쓰였는가.


선거는 숫자를 겨루는 장이 아니라 우선순위를 드러내는 자리다. 그래서 이번 ‘곳간’ 논쟁에서 유권자가 봐야 할 것은 잔액의 크기가 아니다. 기금을 지켰다는 사람도, 기금을 썼다는 사람도 모두 답해야 한다. 포천의 재정은 과연 시민의 삶을 지키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는가.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쓰일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선명해지지 못하는 후보라면, 그가 아무리 재정 전문가를 자처해도 시민의 대표일 수는 없다.


◇ 맺음말


재정은 장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윤리다. 무엇을 남겼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누구를 살렸는가다. 포천시장 선거의 재정안정화기금 공방이 진짜 의미를 가지려면, ‘곳간을 누가 더 잘 지켰나’라는 낡은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 시민 다수의 삶을 지키는 데 실패한 재정은, 아무리 숫자가 멀쩡해도 좋은 재정이 아니다.


메트로포천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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