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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돈의 크기’라는 허상 뒤에 숨은 정치… 포천의 곳간은 시민의 하루를 구했는가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5.1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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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천시장 선거 초반 달군 ‘재정안정화기금’ 공방의 문법… 낡은 회계적 수사(修辭)를 넘어 ‘공공재정의 배분 윤리’를 물어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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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 오면 숫자는 가장 먼저 인간의 얼굴을 가린다. 표와 그래프, 장부의 잔액이라는 무표정한 텍스트가 광장으로 걸어 나와 어느새 후보의 행정 능력과 도덕성을 재단하는 절대적 잣대로 거래된다. 포천시장 선거 초반, 국민의힘 백영현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박윤국 후보가 ‘통합재정안정화기금(이하 재정안정화기금)’을 두고 벌이는 정면충돌 역시 전형적인 숫자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2022년 기준 4,185억 원이라는 적립액과 2026년 말 700억 원대라는 감소 전망치. 3년 사이 무려 3,400억 원의 차이를 두고 한쪽은 ‘민생 구휼을 위한 적극 행정’이라 강변하고, 다른 한쪽은 ‘재정 뿌리를 흔드는 망극 행정’이라 받아친다.


그러나 이 격렬한 공방을 한 꺼풀만 벗겨내면, 정작 가장 먼저 불려 나와야 할 본질이 지워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공공재정이 도달했어야 할 ‘시민의 구체적인 삶’이다. 돈을 과감히 ‘쓴 사람’과 곳간을 굳건히 ‘지킨 사람’의 대결이라는 얄팍한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정작 정치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실종되고 만다. 그 막대한 돈은 과연 누구를 위해, 어떤 순서로 쓰였으며, 결과적으로 소외된 시민들의 하루를 얼마나 구했는가에 대한 준엄한 물음 말이다.


백영현 후보 측의 논리는 명확한 행정적 명분을 딛고 있다. 재정안정화기금은 본래 비상 상황이나 경기 침체기에 쓰라고 마련된 재정적 완충 장치지, 자물쇠의 견고함을 자랑하기 위해 쌓아두는 돈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몰아친 고물가·고금리의 여파와 경기 침체 속에서 지방정부가 재정을 꽁꽁 묶어둔 채 금고 잔액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책임 방기이자 무능이었을 수 있다. 도로망을 확충하고, 주차장을 만들고, 하천과 공원을 정비하며 민생불편 해소에 기금을 투입했다는 설명은 생활밀착형 성과라는 측면에서 유권자에게 직관적인 설득력을 지닌다.


하지만 공공의 재정은 단순히 ‘집행했다’는 사실이나 명분만으로 면책되지 않는다. 토건(土建)과 생활 SOC 사업은 눈에 보이는 성과로 포장하기 가장 쉬운 행정적 알리바이다. 정작 따져야 할 것은 그 투입된 재정이 도시에 남긴 외형적 흔적이 아니라, 시민의 몸에 가닿은 체감의 깊이다. 쌈지주차장이 늘어나고 공원이 반듯해졌다고 해서 폐업을 고민하는 자영업자의 밤이 덜 캄캄해지거나,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는 부모의 오후가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도시의 배경을 고치는 일과 시민의 삶의 조건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엄연히 다르다. 수천억 원을 풀어놓고도 정작 박 후보 측으로부터 “시민들이 지역경제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날 선 공세를 받는 이유를 백 후보 측은 뼈아프게 돌아봐야 한다.


반면 박윤국 후보 측이 치켜든 ‘재정 책임론’ 역시 선거공학적으로 매우 강력한 서사다. 사상 초유의 감염병 위기 속에서도 시민 1인당 전국 최대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동시에 4,200억 원대의 비상금을 물려주었다는 자부심은, 자신들의 시정을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 유능한 관리자’로 포지셔닝하는 데 유용하다. 특히 4,000억 원대 곳간이 700억 원대로 줄어들었다는 수치적 대비는 복잡한 회계 구조를 모르는 유권자에게도 즉각적인 재정 위기감을 불러일으킨다. 인구 감소 대응과 6군단 부지 반환 활용 등 미래의 메머드급 재정 수요를 감당해야 할 포천의 현실을 고려하면, 재정 체력을 비축해야 한다는 경고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남겨둔 돈 역시 저절로 정의로워지지는 않는다. 지방재정의 건전성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는 행정의 수단일 뿐이다. 만약 금고에 쌓인 풍요가 당장 삶의 한계선에 내몰린 시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꼭 필요한 투자와 복지의 시기를 유예한 대가였다면 그것은 건전성이 아니라 ‘지연된 책임’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곳간은 가득한데 골목의 활력이 가라앉고 인구가 유출되고 있었다면, 그 안정이 과연 누구를 위한 안정이었는지 박 후보 측 또한 명쾌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를 향한 자기찬양식 회고만으로는 인구 소멸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 선 포천의 미래 설계도가 될 수 없다.


결국 두 후보의 언어는 서로 정반대의 극점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방재정을 개인의 ‘가계부 논리’로 축소해 소비하는 오래된 정치의 습관을 공유하고 있다.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의 생존, 노년의 돌봄과 청년의 주거 같은 공공성의 위기 앞에서는 둘 다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유권자가 이번 재정 전쟁에서 정말로 봐야 할 것은 장부에 남은 잔액의 크기가 아니라, 그 돈의 흐름 속에 투영된 ‘정치의 시선과 우선순위’다. 진정 유능하고 책임 있는 리더십은 무작정 쓰는 손도, 무작정 잠그는 손도 아니다. 오늘의 절박한 민생에 과감히 재정을 투입하되, 그것이 일회성 정치적 소비로 흩어지지 않도록 정교한 구조적 효과를 남기고, 동시에 다음 세대의 안전판을 조율해내는 균형감각에 있다.


도시는 거대한 발전 구호나 반듯한 콘크리트 인프라로만 버텨지지 않는다. 도시는 오늘 하루를 겨우 버텨낸 소상공인의 결심, 이번 달도 아이를 학원에 보낼 수 있어 조용히 안도한 부모의 한숨, 이 동네에 조금 더 머물러보기로 마음먹은 청년의 망설임 같은 사소하고도 절대적인 일상들로 유지된다. 행정과 재정의 존재 이유는 바로 그 위태로운 하루들이 아주 조금만 덜 무너지도록 붙들어주는 데 있다.


포천의 재정안정화기금 공방이 단순한 선거용 말싸움을 넘어 진정한 지방자치의 가치 경쟁으로 성숙하려면, 이제 숫자의 장막을 걷어치워야 한다. 백영현 후보는 “왜 썼는가”를 넘어 “그래서 누구의 삶이 얼마나 나아졌는가”를 증명해야 하고, 박윤국 후보는 “왜 남겼는가”를 넘어 “다시 맡긴다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지키고 움직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재정은 회계가 아니라 정치의 윤리다. 포천의 유권자들이 투표소에서 끝내 헤아려야 할 것은 남은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재정 덕분에 이 도시 안에서 끝내 주저앉지 않고 살아남은 ‘시민의 숫자’여야 한다.


메트로포천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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