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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공천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이다 — 최경호 시민의 제안을 읽으며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06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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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공천 시스템 개혁, 정당의 내부 문제가 아닌 시민 모두의 과제

청년 공천제.jpg


때로는 전문가의 보고서보다 한 시민의 진지한 제안이 더 날카롭게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의정부시 시민 최경호 씨가 소셜미디어에 올린 청년공천 시스템 개혁 제안이 그렇다. "나댄다고 생각하지 마시고"라는 조심스러운 서두로 시작하는 이 글은, 그 겸손한 출발과 달리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구조적 문제를 정확하게 해부하고 있다.


공천은 정당의 내부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최 씨의 주장은 다르다. 공천은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이며, 그 문이 어떻게 설계되느냐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후보의 범위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공천 시스템은 정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모두의 문제다.


이 주장은 옳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이 주장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104명 중 1명이 말하는 것


경기도 기초단체장 예비후보 104명 가운데 40세 미만이 단 1명이라는 사실은 이미 앞서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이 숫자를 최 씨의 제안과 함께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온다.


104명 중 1명. 이것은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것은 시스템이 청년들을 걸러내고 있다는 증거다. 최 씨가 정확히 지적했듯, 조직·자금·인지도라는 3중 장벽은 아무리 뛰어난 청년이라도 공천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만드는 구조적 필터다.


선거는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는 후보는 공천이라는 사전 필터를 통과한 사람들로 이미 제한되어 있다. 공천 시스템이 특정 세대, 특정 유형의 인물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유권자의 선택권은 그 설계의 범위 안에서만 작동한다.


민주주의의 역설이 여기 있다. 투표는 자유롭지만, 투표할 수 있는 후보의 풀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그 '누군가'가 시민이 아니라 정당 내부의 기득권 구조라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외피를 두른 과두제에 가깝다.


◇ 청년공천의 실패 — 선언과 현실의 간극


최 씨는 청년공천이 무력화되는 네 가지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짚어낸다.


첫째, 청년을 당선 가능성이 낮은 자리로 보내는 구조. "청년 우선 공천"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험지와 후순번으로 청년을 배치하는 관행. 이것은 청년공천이라는 제도의 형식은 갖추되 그 실질을 비워내는 가장 세련된 방식의 기득권 수호다.


둘째, 지역위원회와 현역 중심의 후보선정 권력. 서류상으로는 공정해 보이는 경선 룰이 실제로는 조직력과 동원력을 가진 기득권에게 유리하게 작동하는 구조. 공정한 게임의 규칙처럼 보이지만, 그 규칙 자체가 특정 플레이어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그것은 공정하지 않다.


셋째, 전략공천이 만드는 낙하산 논란과 역풍. 청년을 위한 전략공천이 오히려 지역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청년공천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역설. 좋은 의도가 나쁜 설계를 만나면 역효과를 낳는다는 교훈이다.


넷째, 돈·시간·조직의 3중 장벽. 기탁금, 선거 준비 비용,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시간. 이 장벽들은 재정적 기반이 없는 청년들에게 사실상 진입 금지 신호다. 제도만 있고 실탄이 없으면 청년공천은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한다.


이 네 가지 메커니즘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그것들은 하나의 통합된 시스템으로 작동하며, 기득권의 재생산을 구조적으로 보장한다. 최 씨가 "기득권이 우회할 수 없는 설계"를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 제안의 핵심 — 숫자가 아닌 구조의 변화


최 씨의 제안에서 가장 빛나는 통찰은 이것이다. "청년공천은 숫자 할당이 아니라 당선권 기준 할당이어야 한다."


이 한 문장이 기존 청년공천 논의의 핵심적 맹점을 찌른다. "청년 후보 10%"라는 숫자는 인상적으로 들리지만, 그 10%가 모두 당선 가능성이 없는 자리라면 그것은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 진정한 청년 대표성의 확대는 당선권 내에서의 비율로 측정되어야 한다.


이 논리는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그리고 이것이 실현되려면 정당 내부의 자발적 개혁만으로는 부족하다. 외부의 압력, 즉 시민의 요구와 제도적 강제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시민숙의평가의 도입 역시 주목할 만한 제안이다. 무작위 추출 시민평가단이 후보의 정책과 지역현안 해결 능력을 평가하고, 그 점수가 최종 공천에 30~40% 반영되는 구조. 이것은 공천 과정에 시민의 직접적인 참여를 제도화하는 것이다.


이 제안의 핵심은 '캡처 방지'다. 정당이 완전히 폐쇄적으로 후보를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기득권의 포획이 불가피하다. 시민평가단이라는 외부 심판을 공천 과정에 끌어들임으로써, 내부 기득권이 과정을 왜곡할 수 있는 공간을 줄이는 것이다.


◇ 지역기반형과 공공인재형의 분리 — 현실적 지혜


최 씨가 제안하는 청년 트랙의 이원화, 즉 '지역기반형'과 '공공인재형'의 분리는 특히 현실적인 지혜를 담고 있다.


청년 후보에 대한 기득권의 가장 흔한 공격은 "지역을 모른다"는 것이다. 이 공격은 때로 정당하고, 때로 부당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청년과 정책 전문성을 갖춘 청년은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두 유형 모두에게 불공정하다.


지역기반형 트랙은 시민사회, 직능단체, 봉사활동, 창업 등 지역에서 실질적인 활동을 해온 청년들에게 그 경험을 정치적 자산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준다. 공공인재형 트랙은 정책 역량과 전문성을 갖춘 청년들이 지역 조직력의 부재라는 약점을 극복할 수 있는 경로를 제공한다.


이 이원화는 "텃세의 논리와 청년의 약점을 동시에 해결"한다는 최 씨의 설명처럼, 청년공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교한 해법이다.


◇ 실질 지원 없는 제도는 공허하다


최 씨의 제안에서 또 하나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청년 후보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다.


기탁금과 심사비의 선지원, 정책참모·법률·회계·SNS 운영을 묶은 공용 백오피스 제공, 최소 3개월의 정책인턴·캠프 운영 인력 지원. 이 지원들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의 조건을 만드는 구조적 투자다.


마라톤 경기에서 일부 선수에게만 출발선을 앞당겨 주는 것이 불공정하듯, 조직과 자금을 가진 기성 정치인과 아무것도 없는 청년을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시키는 것도 불공정하다. 실질적 지원은 이 불공정한 출발선을 조정하는 것이다.


"제도만 있고 실탄이 없으면 청년공천은 유명무실하다"는 최 씨의 지적은 이 맥락에서 핵심을 찌른다. 아무리 정교한 제도 설계도 그것을 실행할 자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선언에 그친다.


◇ 공천 개혁은 왜 시민의 문제인가


최 씨의 제안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는 내용 자체만큼이나 그 제안의 주체에 있다. 이것은 정치학자의 논문도, 정당 내부의 개혁안도 아니다. 한 시민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공론장에 던진 제안이다.


공천 개혁이 시민의 문제인 이유는 명확하다. 공천의 결과가 곧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후보의 범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공천 시스템이 특정 유형의 인물만을 통과시키는 필터로 작동한다면, 유권자의 선택권은 그 필터의 범위 안에서만 작동한다.


더 나아가 공천 시스템은 어떤 사람이 정치에 입문할 수 있는가를 결정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정치 문화 전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기득권 재생산에 유리한 공천 시스템은 기득권 중심의 정치 문화를 영속시킨다. 청년과 새로운 세대의 진입을 허용하는 공천 시스템은 정치의 갱신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것이 공천이 정당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그리고 이것이 최 씨와 같은 시민들이 공천 시스템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 제안을 넘어 — 실현을 위한 과제


최 씨의 제안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이 제안이 더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소셜미디어의 한 게시물이 제도 변화로 이어지려면, 그것이 공론장에서 더 넓은 논의의 씨앗이 되어야 한다.


둘째, 정당들이 이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청년공천 시스템 개혁은 정당의 장기적 이익과도 일치한다. 새로운 세대의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현실에 새로운 세대의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는 현실에서, 청년 정치인의 등장은 정당의 미래 지지 기반을 확충하는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청년공천 개혁을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 아니라 정당 생태계의 건강한 갱신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셋째, 제도화를 위한 구체적 경로가 마련되어야 한다. 최 씨의 제안은 방향과 원칙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실제 공직선거법 개정이나 정당 당규 변경으로 이어지려면 입법적·제도적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 시민의 제안이 정책으로 전환되는 과정에는 언제나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넷째, 청년공천 개혁이 청년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더 넓게 알려야 한다. 청년의 정치 참여 확대는 청년 세대만의 이익이 아니다. 다양한 세대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구조는 모든 시민의 이익이다. 청년공천 개혁의 논리는 여성, 장애인, 소수자 등 정치적으로 소외된 모든 집단의 대표성 확대 논의와 맞닿아 있다.


◇ 텃세와 관성에 맞서는 시민의 언어


최 씨의 제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 언어의 성격이다. 분노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제안한다. 문제를 진단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해법을 설계한다. 정치를 비난하는 대신 정치를 바꾸려 한다.


이것이 시민 정치의 본래 모습이다. 선거 때만 투표하고 나머지 시간은 정치를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 규칙과 구조 자체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 공천이라는 민주주의의 첫 번째 문이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를 시민이 직접 제안하는 것.


"나댄다고 생각하지 마시고"라는 서두는 겸손하지만, 사실 이것은 나대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의 행사다. 공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시민이 묻고 제안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를 살아있게 만드는 힘이다.


◇ 마지막으로 — 첫 번째 문을 바꾸는 것의 의미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꽃이 피려면 씨앗이 있어야 하고, 씨앗이 자라려면 토양이 있어야 한다. 공천은 그 토양이다.


아무리 공정한 선거 제도를 갖추어도, 공천이라는 토양이 특정 씨앗만을 키우도록 설계되어 있다면 민주주의의 꽃은 다양하게 피어날 수 없다. 104명 중 1명이라는 숫자는 그 토양이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최 씨의 제안은 그 토양을 바꾸자는 것이다. 당선권 기준 할당, 시민숙의평가, 텃세 방지 안전장치, 실질적 비용 지원. 이 네 가지 축이 함께 작동할 때, 공천이라는 첫 번째 문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열릴 수 있다.


그 문이 열릴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더 다양한 관점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될 것이다. 그리고 정치가 소수의 기득권 집단이 아니라 실제 시민들의 삶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조금씩 변화할 것이다.


이것은 청년만을 위한 변화가 아니다. 이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한 변화다.


의정부시 시민 최경호 씨의 제안이 더 넓은 공론장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제안이 씨앗이 되어, 대한민국 지방정치의 토양을 조금씩 바꾸어 나가기를 기대한다.


민주주의는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더 나은 방향으로 갱신되어야 하는 과정이다. 한 시민의 진지한 제안이 그 갱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신뢰의 표현이다.


[편집자 주] 이 칼럼은 청년 정치 참여 확대와 공천 시스템 개혁에 대한 공론화를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의도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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