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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밭에서 산실로, 산실에서 다시 밭으로 — 양주시 농가도우미 사업을 환영하며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0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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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농업인의 모성과 생계,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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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씨앗을 심어야 할 시기는 정해져 있고, 잡초는 사람의 사정을 봐주지 않으며, 가축은 매일 돌봄을 요구한다. 농업이라는 일의 본질은 자연의 리듬에 맞추어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밭을 일구는 사람이 아이를 품고 있다면, 혹은 막 아이를 낳은 직후라면 어떻게 되는가. 도시의 직장인에게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라는 제도적 보호막이 있다. 그러나 여성농업인에게 그 보호막은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다. 배가 불러도 밭에 나가야 했고, 아이를 낳은 지 며칠 만에 다시 일어서야 했다. 모성과 생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아온 것이 여성농업인의 오랜 현실이었다.


양주시가 출산 전후 여성농업인을 위한 농가도우미 지원 사업 신청을 시작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각별하다. 이 작은 정책 하나가 그 오랜 현실에 균열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


여성농업인은 대한민국 농업의 중추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 농업 종사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반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오랫동안 '농부의 아내'라는 프레임 속에서 비가시화되어 왔다. 독립적인 경제 주체로서의 여성농업인이 아니라, 남성 농업인을 보조하는 존재로 인식되어온 것이다.


이 비가시화는 정책의 공백으로 이어졌다. 도시 여성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출산 관련 보호 제도들이 여성농업인에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자영농의 특성상,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급여의 혜택을 받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 결과는 냉혹했다. 출산을 앞두고도 영농을 중단할 수 없어 무리하게 일을 이어가거나, 출산 후 충분한 회복 기간 없이 다시 밭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모성 보호는 도시 여성들만의 권리처럼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농촌의 여성들은 조용히 그 고통을 감내해왔다.


양주시의 농가도우미 사업은 이 보이지 않는 고통에 국가와 지방정부가 응답하는 방식이다.


◇ 제도의 설계가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


이 사업의 내용을 살펴보면, 설계자들이 여성농업인의 현실을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출산 전 90일부터 출산 후 150일까지 240일이라는 지원 기간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임신 후기의 신체적 부담이 커지는 시점부터 출산 후 회복과 초기 육아가 가장 집중되는 시기까지를 포괄하는 이 기간 설정은, 여성농업인이 실제로 영농 공백이 발생하는 시점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영농 관련 작업과 가사일을 함께 대행한다는 것도 중요하다. 농촌에서 영농과 가사는 분리되지 않는다. 밭일을 대신해주더라도 집안일이 쌓이면 산모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는다. 두 가지를 함께 지원하는 것은 여성농업인의 삶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의 반영이다.


1일 기준단가 100,416원이라는 구체적 수치도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도우미의 노동에 적정한 가치를 부여하는 동시에, 여성농업인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지원임을 의미한다. 명목상의 지원이 아니라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 지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최대 87일의 지원 일수는 240일의 전체 기간 중 실제 필요한 날에 집중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한다. 농업의 특성상 파종기나 수확기 등 특정 시기에 노동력 수요가 집중되는 만큼, 이 유연성은 실질적인 가치를 가진다.


◇ 모성 보호를 넘어 — 농촌 소멸 방지의 열쇠


이 사업의 의미는 개별 여성농업인의 모성 보호에 그치지 않는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것은 농촌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과 직결된 문제다.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대한민국 농업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구조적 위기다. 젊은 세대가 농촌을 떠나는 이유 중 하나는 농촌에서의 출산과 육아가 도시보다 훨씬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는 현실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도 농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는다면, 농촌의 젊은 여성들은 계속해서 도시로 향할 것이다.


농가도우미 사업은 이 흐름을 조금이나마 되돌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출산과 육아가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지역 사회의 지원 속에서 함께 감당할 수 있는 과제가 될 때, 농촌에 머물고자 하는 젊은 여성들의 선택이 조금 더 쉬워진다.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과제와 농촌 소멸이라는 지역적 과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여성농업인을 위한 모성 보호 정책은 단순한 복지를 넘어 두 가지 위기에 동시에 대응하는 전략적 의미를 가진다.


◇ 양주시의 선택이 가진 상징성


양주시가 이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지역 행정의 시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화려한 개발 사업이나 대형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지역에서 묵묵히 일하는 여성농업인의 출산과 회복을 지원하는 것. 이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 정책이다. 언론의 주목을 받기 어렵고, 선거에서 표로 직결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정책의 추진은 더욱 의미 있다.


지방행정의 본질은 거창한 비전의 선언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다. 밭을 일구며 아이를 키우는 여성농업인의 필요에 응답하는 양주시의 선택은, 그 본질에 충실한 행정의 모습이다.


이송주 양주시 농업기술센터 소장이 밝힌 "여성농업인이 일과 가정을 모두 지킬 수 있도록 실질적인 지원책을 발굴하겠다"는 약속은 단순한 행정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오랫동안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했던 여성농업인들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약속이다.


◇ 더 나아가야 할 방향


이 사업을 환영하면서도 앞으로의 과제를 함께 생각해본다.


인지도 제고가 첫 번째 과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알려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농촌 지역의 특성상 정보 접근성이 낮은 경우가 많은 만큼, 읍면동 행정복지센터를 통한 적극적인 홍보와 함께 농업기술센터, 여성농업인 단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안내가 필요하다.


도우미 인력의 안정적 확보도 중요한 과제다. 지원 제도가 있어도 실제로 파견할 도우미가 부족하다면 제도는 유명무실해진다. 농가도우미로 활동할 수 있는 인력 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도우미들에게도 적정한 처우와 교육이 제공되어야 한다.


지원 범위의 점진적 확대도 검토할 만하다. 현재 출산 전후에 한정된 지원이 장기적으로는 질병, 부상 등 다른 사유로 인한 영농 공백으로도 확대된다면, 여성농업인의 사회적 안전망이 더욱 촘촘해질 것이다.


◇ 밭과 산실 사이에서


봄이 오면 밭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양주시의 여성농업인들은 조금 다른 봄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품은 채로, 혹은 갓 아이를 낳은 몸으로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봄.


밭일을 대신해줄 손이 있고,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이 있으며, 지역 사회가 함께 이 시간을 지지해준다는 것을 아는 봄. 그 봄이 여성농업인들에게 조금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를 바란다.


모성과 생계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 밭에서 산실로, 산실에서 다시 밭으로 돌아오는 여정이 조금 더 안전하고 따뜻해지는 사회. 양주시의 농가도우미 사업은 그 사회를 향한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이다.


그 한 걸음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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