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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파를 이긴 트랙 위에서 — 의정부 비닐트랙이 증명한 것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3.06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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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숫자 너머에 있는 것,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적극행정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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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가혹한 계절이다. 한파가 몰아치는 날 아침, 운동화 끈을 묶고 밖으로 나서는 것은 의지의 문제이기 이전에 안전의 문제다. 영하의 기온, 빙판길, 그리고 미세먼지. 이 세 가지가 겹치는 날이면 어지간한 의지로는 집 밖을 나서기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운동을 포기하는 날들이 쌓이면, 겨울은 건강을 잃어가는 계절이 된다.


의정부도시공사가 종합운동장 주경기장 조깅트랙에 비닐하우스를 씌워 만든 '비닐트랙'은 이 단순하지만 절실한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다. 2026년 1월 2일부터 2월 22일까지 52일간 운영된 이 시설에 26,233명이 다녀갔다. 일 평균 514명, 시간당 평균 40명. 이 숫자들은 단순한 이용 통계가 아니다. 그것은 겨울 내내 따뜻한 트랙 위를 달리고 걸었던 의정부 시민들의 발걸음이다.


◇ 97%가 말하는 것


만족도 조사 결과는 인상적이다. 이용객 103명 중 97%가 만족 이상으로 응답했고, 98%가 재이용 의향을 밝혔다. 행정 서비스에서 이 수준의 만족도는 흔하지 않다.


그러나 이 숫자보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용자들의 목소리다. "겨울에도 따뜻하게 운동할 수 있어 감사하다." "매년 운영해 달라." "국민 건강에 크게 기여하는 정책." 이 말들 속에는 단순한 시설 만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감사하다는 말. 행정 서비스에 대해 시민이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그 서비스가 단순한 편의 제공을 넘어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켰다는 신호다. 겨울철 실내 운동 공간에 대한 접근성이 낮은 시민들, 헬스장 회원권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 한파에 취약한 고령층. 비닐트랙은 이들에게 단순한 운동 공간이 아니라 건강권의 실질적 보장이었다.


◇ 비닐하우스라는 역발상의 지혜


이 사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 발상의 단순함이다. 비닐하우스. 농업에서 흔히 쓰이는 이 구조물을 도심의 운동 트랙에 씌운다는 아이디어는, 거창한 기술이나 막대한 예산 없이도 시민의 필요에 응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잡한 문제를 복잡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것이 행정의 관성이라면, 단순한 문제를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적극행정의 미덕이다. 겨울철 야외 운동 공간의 부재라는 문제에 대해, 비닐하우스라는 단순하고 경제적인 해법을 찾아낸 것은 그 미덕의 좋은 사례다.


물론 단순함이 곧 쉬움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랙 전체를 덮을 수 있는 비닐하우스의 설치와 관리, 환기와 보온의 균형, 안전 관리, 이용 질서 유지. 이 모든 것이 실제 운영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었다. 일부 이용자들이 환기와 보온 개선을 요청했다는 것은 이 과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운영자들이 이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도 확인된다.


◇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간의 가치


이번 비닐트랙 운영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용자의 연령대 분포다. 40~50대가 가장 많이 이용했지만, 60세 이상 고령층도 상당수 참여했다. 전 세대가 함께 이용하는 생활체육 공간으로 기능했다는 평가는 이 시설의 사회적 가치를 잘 보여준다.


고령층에게 겨울철 운동은 특히 중요하다. 근력 유지, 낙상 예방, 심혈관 건강 관리. 이 모든 것이 규칙적인 신체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고령층은 한파와 빙판길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기도 하다. 따뜻하고 안전한 실내 운동 공간에 대한 필요가 가장 큰 집단이 고령층이라는 점에서, 비닐트랙은 그 필요에 정확히 응답한 시설이다.


응답자의 84%가 의정부 시민이라는 사실도 의미 있다. 이것은 이 시설이 외부 방문객을 위한 관광 자원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일상적 건강 인프라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지역 주민을 위한, 지역 주민에 의한 생활체육 공간. 그것이 공공 체육 시설의 본래 역할이다.


◇ 건강권이라는 관점에서


의정부도시공사 김장호 사장 직무대행이 비닐트랙을 "한파와 미세먼지 등 겨울철 외부 환경으로부터 시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행정 사례"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건강권이라는 개념을 행정의 언어로 가져온 것은 중요한 시각의 전환을 담고 있다.


건강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운동할 수 있는 환경, 안전한 공간, 경제적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시설. 이것들이 갖추어질 때 비로소 건강권은 실질적인 권리가 된다. 헬스장 회원권을 살 여유가 없는 시민, 실내 수영장까지 이동하기 어려운 고령층,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 운동을 포기해야 하는 시민. 이들에게 무료로 개방된 비닐트랙은 건강권의 실질적 보장이었다.


공공 체육 시설의 역할을 단순한 편의 제공이 아니라 건강권 보장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 이 시각의 전환이 비닐트랙이라는 발상을 가능하게 했고, 97%의 만족도라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 적극행정의 교과서적 사례


행정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최소한의 것을 하는 소극행정이고, 다른 하나는 시민의 필요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응답하는 방법을 찾는 적극행정이다.


비닐트랙은 후자의 전형적인 사례다. 겨울철 야외 운동 공간의 부재라는 문제를 인식하고, 기존 시설을 창의적으로 활용하는 해법을 찾아내며, 실제로 실행에 옮긴 것. 이 과정 어디에도 "규정에 없다"거나 "전례가 없다"는 소극적 태도가 끼어들 자리가 없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사업이 새로운 시설을 짓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설을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미 있는 조깅트랙에 비닐하우스를 씌우는 것. 이 발상은 예산의 효율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모범적이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새로운 실내 체육관을 짓는 것보다, 기존 시설을 창의적으로 활용해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 더 현명한 행정이다.


◇ 내년을 기약하며 — 더 나은 비닐트랙을 위한 제언


98%의 재이용 의향은 이 사업의 지속 운영에 대한 시민들의 강력한 요청이다. 그리고 그 요청에 응답하는 것이 행정의 의무다.


다음 겨울 비닐트랙이 더 나은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몇 가지를 제언한다.


환기 시스템의 개선이 첫 번째다. 밀폐된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운동하는 만큼 공기 질 관리는 안전과 직결된다. 자연 환기와 기계 환기를 결합한 효과적인 환기 시스템의 도입이 필요하다.


이용 질서 관리도 과제다. 인기 있는 시설일수록 혼잡과 무질서의 문제가 발생하기 쉽다. 시간대별 이용 인원 관리, 보행자와 러너의 동선 분리 등 세심한 운영 매뉴얼이 필요하다.


운영 기간의 확대도 검토할 만하다. 1월 초부터 2월 말까지의 운영 기간을 12월과 3월까지 연장한다면 더 많은 시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파는 12월에도, 3월에도 찾아오기 때문이다.


다른 지자체와의 공유도 의미 있는 과제다. 비닐트랙이라는 아이디어와 운영 노하우를 경기도 내 다른 지자체들과 공유한다면, 의정부의 적극행정이 더 넓은 지역의 시민들에게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다.


◇ 트랙 위에서 만나는 공동체


26,233명. 이 숫자 속에는 각자의 이유로 비닐트랙을 찾은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새해 건강 결심을 실천하려는 직장인, 관절이 아파도 걷기를 포기하지 않는 어르신, 아이와 함께 달리기를 즐기는 부모, 미세먼지 때문에 야외 운동을 포기했다가 다시 운동화를 신은 시민.


이들이 같은 트랙 위에서 함께 걷고 달리는 것은 단순한 운동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공공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경험이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목적으로 모여,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며 함께 건강을 가꾸는 것. 그 경험이 쌓일 때 도시는 단순한 거주 공간을 넘어 살아있는 공동체가 된다.


비닐트랙은 그 공동체의 경험을 가능하게 한 공간이었다.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 따뜻한 트랙 위에서 의정부 시민들은 함께 달렸다. 그리고 그 달림이 모여 26,233번의 건강한 하루가 만들어졌다.


내년 겨울에도 그 트랙이 다시 열리기를 기대한다. 더 따뜻하고, 더 쾌적하고, 더 많은 시민들을 품을 수 있는 트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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