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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0만 명의 이웃, 포천이 선택한 통합의 길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6.0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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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포체류지원센터 지정이 던지는 질문, 이민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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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 소흘읍 호국로. 경기 북부의 평범한 도로변에 자리 잡은 건물 하나가 올해 6월부터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법무부 지정 동포체류지원센터, 지정번호 제2026-14호.


숫자와 행정 용어로 가득한 지정서 한 장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묵직하다. 경기 북부 10개 시·군에 흩어져 살아가는 10만 명의 고려인, 중국동포, 사할린 귀환동포, 탈북동포들에게 이 건물이 공식적인 기댈 곳이 생겼다는 뜻이다.


◇ 21년이라는 시간


(사)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2005년이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경기 북부 이주민들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 있었다. 언어 장벽, 법적 지위의 불안정, 노동 착취, 의료 접근성 부재. 이 모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곁에서 21년을 버텼다. 법무부 출입국 비영리 법인 제1호라는 타이틀은 그 시간의 증명이다.


민간이 먼저 나섰고, 정부가 뒤따랐다. 이번 동포체류지원센터 지정은 그 순서를 보여준다. 현장에서 필요를 발견하고 해결책을 만들어온 21년의 경험이 정부 공인 거점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된 것이다. 올해 처음으로 정부 예산이 직접 투입된다는 사실은 그 전환의 상징이다.


◇ 3만 6천 명이 바꾼 것


숫자 하나가 이 이야기의 배경을 설명한다.


법무부의 동포 체류자격 통합 조치가 시행된 지 3개월, 4만 7,632명이 재외동포(F-4) 비자 변경을 신청했고 그 중 3만 6,561명이 허가를 받았다. 76.7%의 전환율. 3개월 만에 3만 6천 명의 법적 지위가 바뀌었다.


이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한 비자 변경이 아니다. 방문취업(H-2) 비자로 불안정하게 체류하던 동포들이 재외동포(F-4) 자격을 얻으면서 취업 제한이 풀리고, 체류 안정성이 높아지고, 한국 사회의 정식 구성원으로 편입되는 과정이다. 건설, 주유, 매장 정리 등 기존에 막혀 있던 10개 단순노무 직종의 취업이 허용된 것도 이들의 실질적인 생계와 직결된 변화다.


그러나 제도의 문이 열렸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 문을 찾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에 가야 하는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한국어로 된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는지. 이 질문들 앞에서 막히는 사람들이 있다. 포천의 동포체류지원센터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 제도의 틈새, 사람의 현실


이번 통합 조치가 완벽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그 지적은 경청할 가치가 있다.


조선족 학교를 졸업하고 수십 년을 한국에서 살아온 60~70대 동포들에게 170시간 이상의 사회통합프로그램 이수를 요구하는 것이 현실적인가. 한국어로 일상 대화를 나누는 데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한국어 수업을 강제하는 것이 합리적인가. 영주권 신청의 소득 요건 완화가 고령의 동포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으로 돌아가려면 무엇이 더 필요한가.


제도는 평균을 위해 설계되지만, 현실은 개별적이다. 법의 문자와 사람의 삶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현장 지원 기관의 역할이다. 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가 21년간 해온 일이 바로 그것이다. 제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제도의 언어를 사람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


동포 출신 전문 상담 자원을 직접 채용해 운영한다는 계획은 그 방향의 연장선이다. 고려인 동포가 고려인 동포의 고충을 듣고, 중국동포가 중국동포의 언어로 법률 자문을 안내한다. 제도와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장 효과적으로 줄이는 방식이다.


◇ 청소년이라는 미래


이 이야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른들의 체류 지원이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이다.


포천다문화국제학교는 21년째 운영 중이다. 10~15개국 배경의 중도입국 청소년들이 이 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밟는다.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을 위해 매일 4시간의 집중 한국어 수업이 배치된다. K-CULTURE 세계로학교에서는 에어컨·보일러 설비, 타일, 도배, 목공, 드론 제어, AI 설비기술까지 실무 기술을 가르치고 자격증 취득을 지원한다.


이 아이들은 누구인가. 부모를 따라 한국에 왔거나,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이주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다. 한국어도 완전하지 않고, 부모의 나라 언어도 완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의 존재들.


이 아이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기술을 익혀 경제적으로 자립한다는 것은 단순한 직업 교육의 성과가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뿌리를 내리는 과정이다. 이들이 성인이 되어 포천에서 일하고 세금을 내고 지역 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 포천의 인구 감소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답을 찾게 된다.


◇ 인구 정책의 진짜 의미


포천시가 인구성장국을 신설하고 외국인·다문화 주민의 정착을 핵심 과제로 삼은 것은 현실적 선택이다. 저출생과 청년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이미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10만 명의 동포 인구를 안정적으로 통합하는 것은 인구 정책의 가장 현실적인 경로다.


그러나 이 선택이 진정성을 갖추려면 숫자 너머를 봐야 한다. 인구 통계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주민을 바라보는 것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바라보는 것은 다르다. 전자의 시각에서는 체류 지원 센터가 인구 유입 도구가 되고, 후자의 시각에서는 공동체 통합의 거점이 된다.


함께하는다문화네트워크가 21년간 해온 일은 후자의 방식이었다. 이주민을 정책 대상이 아니라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대하는 것, 그들의 고충을 행정 처리 건수가 아니라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 그 철학이 21년을 버티게 한 힘이었을 것이다.


◇ 포천이 보여주는 가능성


접경지역, 도농복합도시, 인구 감소 위기. 포천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대체로 어둡다. 그러나 이 도시가 지난 수십 년간 조용히 쌓아온 다문화 인프라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전국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 고려인 할머니와 중국동포 청년과 탈북 가족과 포천 토박이가 같은 동네에서 이웃으로 지내는 곳. 그 공존이 갈등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저절로 된 일이 아니다. 21년간 현장에서 일해온 사람들의 노력이 쌓인 결과다.


법무부 지정 동포체류지원센터의 개소는 그 노력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그러나 인정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고 공식 거점이 마련된 만큼,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촘촘한 서비스가 닿아야 한다. 제도의 틈새에서 여전히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내야 한다.


6월 10일 전후, 소흘읍 호국로의 그 건물에서 개소식이 열린다.


테이프를 끊고 사진을 찍는 행사가 끝나면, 진짜 일이 시작된다. 노무 고충을 안고 찾아오는 동포, 자녀의 학교 문제로 막막한 부모, 비자 연장 서류를 앞에 두고 막힌 사람들. 그들이 문을 두드릴 것이다.


그 문이 열려 있는 한, 포천의 10만 이웃은 혼자가 아니다.


메트로포천 양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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