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나무
늘 푸른 기상으로 우리 땅을 지켜온 나무, 바로 소나무다. 소나무는 우리 국민의 사랑을 가장 듬뿍 받는 민족의 나무이기도 하다. 학명 중 속명인 '피누스(Pinus)'는 켈트어로 '산에서 나는 나무'를 뜻하며, 종명인 '덴시플로라(densiflora)'는 꽃이 많이 달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소나무 외에도 바늘잎이 두 개씩 돋고 줄기 껍질이 붉다 하여 '적송(赤松)', 내륙 지방에서 자란다 하여 '육송(陸松)', 잎이 여성처럼 부드럽다 하여 '여송(女松)'이라 불리기도 하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고유의 수종이다.
소나무가 새로운 생명을 맺는 과정은 무척이나 길고도 신비롭다. 하나의 씨앗이 영글기까지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첫해 5월에 꽃을 피우지만, 꽃잎이 잘 발달하지 않고 향기도 약해 벌과 나비가 잘 찾아오지 않는다. 대신 소나무는 바람을 선택했다. 공기 주머니가 두 개 달린 가벼운 꽃가루를 바람에 실어 멀리 보냄으로써 수분(受粉)하는 풍매화(風媒花)의 길을 택한 것이다. 개화 직후 첫해에는 꽃가루받이만 겨우 마친 뒤, 이듬해 6월이 되어서야 화분관이 생장하여 비로소 수정이 이루어진다. 그 후 솔방울이 최종 크기로 자라나 그해 9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단단한 씨앗으로 성숙한다.
이렇게 맺힌 씨앗을 퍼뜨리는 과정에는 소나무만의 지극한 '자식 사랑'이 숨어 있다. 날씨가 맑고 바람이 좋은 날이면, 엄마 소나무는 자식 같은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솔방울을 활짝 열어젖힌다. 반대로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솔방울을 꽁꽁 오므린다. 비 오는 날 씨앗이 떨어지면 멀리 가지 못하고 엄마 나무 바로 밑에 떨어져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죽기 때문이다. 미물처럼 보이는 나무일지라도 자식을 향한 사랑만큼은 이토록 눈물겹다.
소나무는 자라는 지역에 따라 저마다의 이름과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금강송(金剛松), 강송(剛松), 춘양목(春陽木) 등이다. 금강송은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서 자라는데, 줄기가 곧고 수관이 좁아 곧은 절개의 상징과도 같다. 경북 봉화의 춘양면 일대에서 자라는 소나무를 뜻하는 춘양목은, 1980년대 초반까지 춘양역을 통해 운송되던 소나무들의 품질이 워낙 우수하여 출발역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꿋꿋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소나무는 한민족의 표상으로서 수천 년의 세월을 우리와 함께 호흡해 왔다.
역사 속에서도 소나무의 흔적은 깊게 새겨져 있다. 이인로의 <파한집>에는 신라 시대부터 화랑들이 수양의 일환으로 소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고, 고려 시대에는 부귀영화를 기원하며 소나무를 심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태종 11년에 무려 3,000명의 백성을 동원하여 남산에 20일 동안 소나무를 심었다는 구체적인 기록도 존재한다.
조선 왕조에게 소나무는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자재였다. 궁궐과 사찰을 짓고, 판옥선이나 조운선 같은 국가의 배를 만드는 데 소나무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임진왜란 당시 단단한 소나무로 만든 판옥선은 무른 삼나무로 만든 일본 배를 격파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또한 이조백자를 구워낼 때도 소나무만 한 것이 없었다. 불티가 생기지 않고 완전하게 재로 변해 백자의 빛깔을 온전히 살려주는 것은 오직 소나무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소나무가 국가의 핵심 자재로 사용되다 보니, 조선 왕실은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정책을 펼쳤다.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는 '금산(禁山)'과 '금송(禁松)' 지역을 전국 200여 곳에 지정해 보호하고 조림을 장려했다. 안면도의 소나무는 병선(兵船) 건조를 위해 따로 관리했고, 울진 소광리의 소나무는 왕실의 관곽재(棺槨材) 생산을 위해 특별 관리 구역으로 두어 엄격하게 지켜냈다.
소나무는 곧은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며 한시부터 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술 작품의 영감이 되어왔다. 애국가 속에 등장하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는 고난을 극복하는 민족의 의지를 담고 있으며, 추사 김정희의 명작 <세한도>를 비롯한 수많은 산수화의 중심에는 늘 소나무가 서 있었다. 심지어 소나무의 한자인 '송(松)' 자는 나무 목(木) 자에 벼슬을 뜻하는 공(公) 자를 붙여 만든 글자이다. 벼슬을 주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훌륭한 나무라는 뜻이다. 실제로 역사 속 소나무들은 인간처럼 벼슬을 받거나 재산을 상속받기도 했다. 속리산의 '정이품송'은 세조가 법주사로 행차할 때 스스로 가지를 들어 올려 왕의 가마가 지나가게 했다 하여 정이품이라는 벼슬을 받았고, 경북 예천의 600년 된 소나무 '석송령'은 자기 명의의 땅을 가지고 매년 세금을 내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송계(松契)'까지 운영되고 있을 정도다. 궁궐 복원을 위해 소나무를 벨 때조차, 인간들은 나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며 '어명이요!'라고 세 번 외쳐 예의를 갖춘 후에야 비로소 톱을 대었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소나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면 대문에 솔가지를 매달은 금줄을 쳐서 아이의 첫날을 축복했다.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자라났고, 소나무로 만든 장롱에 옷을 보관했으며, 소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추위를 이겼다. 솔잎으로 차를 만들어 마시며 풍류를 즐기다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소나무로 만든 관(棺)에 들어가 솔밭에 묻히며 삶을 마감했다. 참으로 지극한 '소나무 문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토록 문화적 가치가 높고 쓰임새가 다양한 우리의 소나무가 안타깝게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 건조 기후와 '소나무 에이즈'라 불리는 소나무재선충 등 병충해의 확산 때문이다. 소나무재선충의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는 몸에 10만 마리가 넘는 재선충을 지니고 다니다가, 소나무 신초가 돋아나는 5월에 나무를 갉아먹으며 상처를 낸다. 이 상처를 통해 침입한 재선충은 소나무의 수분 이동 통로인 가도관을 막아버려, 나무를 한 달 사이에 시름시름 말라 죽게 만든다. 감염되면 100% 사멸하는 무서운 병이다. 현재 정부에서는 방제 대책으로 감염된 나무를 벌채하여 약제 살포 후 훈증하거나 매립하고, 매개충의 유충이 살아남지 못하도록 파쇄하여 폐기물 처리하는 등 사투를 벌이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전망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2090년대에는 강원도 산간지대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소나무를 볼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 소나무가 사라진다는 것은 단순히 나무 한 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천 년 넘게 이어온 한민족의 혼과 문화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 다음 세대들도 푸른 소나무의 기상을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 모두가 소나무를 지키기 위한 보호 대책에 절실한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글쓴이: 박찬억 (雅號 松齋) 제12대 포천중·일고 총동문회장, 산림교육 전문가, 포천시 지방부이사관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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