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을 만드는 방법

윷을 던지는 손이 있다. 그 손이 젊을 수도 있고 주름질 수도 있다. 전라도 어느 마을에서 태어나 포천에 뿌리를 내린 손. 고향의 흙냄새를 기억하면서도 포천의 바람에 익숙해진 손. 그 손이 윷을 던지며 웃는다.
8일 포천공설운동장에서 열린 2026 포천시 호남향우회 연합회 척사대회. 가산, 소흘, 영중, 영북, 이동, 일동, 포천 등 7개 지회의 향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윷놀이를 즐기고, 경품을 나누며, 고향의 정을 확인하는 자리. 그러나 이 자리가 단순한 놀이판이 아니라는 것을 참석자들은 알고 있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새로운 고향을 만드는 방법. 그것이 향우회다. 같은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낯선 곳에서 서로를 알아보고, 손을 잡으며, 함께 살아가는 것. 이것이 척사대회가 담고 있는 진짜 의미다.
◇ 천년의 이름, 전라도
전라도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 1018년이다. 고려 현종 9년, 전주와 나주의 첫 글자를 합쳐 만든 이름. 그 이름이 천년이 넘는 세월을 이어왔다.
천년이라는 시간을 생각해보자. 고려가 있었고, 조선이 있었으며,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해방이 있었다. 전쟁이 있었고, 산업화가 있었으며, 민주화가 있었다. 이 모든 역사를 전라도라는 이름이 함께했다.
김남영 사무총장이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충절의 고장으로 자리매김해 왔다고 말한 것은 이 역사의 무게를 담은 것이다. 충절이라는 단어가 가볍지 않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호남이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약무호남 시무국가. 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 이순신 장군의 이 말이 임진왜란이라는 극한의 위기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호남이 나라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는 것. 이것이 호남 사람들이 가진 자부심의 역사적 근거다.
포천에 사는 호남 출신 시민들이 이 역사를 기억하고 공유하는 것. 이것이 척사대회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는 이유다.
◇ 한강과 김대중, 호남이 낳은 세계적 인물들
한강. 전남 고흥 출신.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 그리고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전남 신안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
두 사람이 모두 전남 출신이라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호남이 예술과 평화의 고장이라는 것을 이 두 사람이 세계에 증명한 것이다.
한강의 문학이 세계를 감동시킨 것은 인간의 고통과 회복에 대한 깊은 통찰 때문이다. 그 통찰이 어디서 왔는가. 고향의 땅, 고향의 사람들, 그리고 고향이 품고 있는 역사. 이것들이 작가의 감수성을 만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평생의 헌신에 대한 것이다. 수십 년의 탄압과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것. 이 불굴의 정신이 어디서 왔는가. 호남의 저항 정신, 불의에 굴하지 않는 기개. 이것이 그의 삶을 만든 것이다.
척사대회에서 이 두 사람의 이름이 언급된 것은 향우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이다. 우리가 나온 땅이 이런 사람들을 낳았다는 것. 그 땅의 정신이 우리 안에도 있다는 것. 이것이 정체성의 확인이다.
◇ 지푸라기와 동아줄의 비유
낱개의 지푸라기는 힘이 없지만 여러 가닥이 합쳐져 동아줄이 되면 무엇이든 묶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김남영 사무총장의 이 비유가 향우회의 본질을 정확하게 담고 있다.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 정착한 사람은 혼자다. 아는 사람도 없고, 기댈 곳도 없으며,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줄 사람도 없다. 이것이 지푸라기 한 가닥의 상태다.
그러나 같은 고향 출신의 사람들이 모이면 달라진다. 서로를 알아보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것. 이것이 지푸라기들이 모여 동아줄이 되는 것이다.
향우회가 이 역할을 한다. 포천에 새로 이사 온 호남 출신 사람이 향우회를 통해 연결망을 만드는 것. 일자리 정보를 나누고, 생활 정보를 공유하며,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 이것이 향우회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실질적인 영향이다.
7개 지회가 연합회로 모인 것도 이 비유와 연결된다. 각 지회가 지푸라기라면 연합회는 동아줄이다. 흩어진 힘을 모아 더 큰 힘을 만드는 것. 이것이 연합회의 존재 이유다.
◇ 윷놀이가 만드는 공동체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함께 웃고, 함께 아쉬워하며, 함께 기뻐하는 것. 이 공유된 감정이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각 지회별로 팀을 구성해 경합을 벌이는 것이 경쟁이지만 그 경쟁이 적대적이지 않다. 같은 향우회 안에서의 경쟁은 서로를 더 잘 알게 되는 과정이다. 어느 지회가 이기든 모두 호남 향우라는 것이 변하지 않는다.
전통 놀이인 윷놀이를 선택한 것도 의미가 있다. 고향에서 하던 놀이를 포천에서 하는 것. 이것이 고향과의 연결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몸이 포천에 있어도 마음은 고향의 명절 마당을 기억하는 것. 윷놀이가 그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것이다.
포천에 정착해 살면서 고향 사람들과 한자리에 모여 전통 놀이를 즐기니 큰 위안과 힘이 된다는 참석자의 말이 이것을 잘 표현한다. 위안과 힘. 이 두 가지가 향우회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다.
◇ 포천이라는 새로운 고향
포천에 정착한 호남 출신 시민들에게 포천은 무엇인가. 고향을 떠나온 곳인가, 아니면 새로운 고향인가.
시간이 지나면 경계가 흐려진다. 포천에서 아이를 낳고, 포천에서 아이를 키우며, 포천의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 이 과정에서 포천이 점점 고향이 되어간다. 전라도는 태어난 고향이고, 포천은 살아가는 고향이 되는 것이다.
향우회가 이 두 고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전라도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포천의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 이 두 가지가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는 것. 이것이 향우회가 만드는 정체성의 모습이다.
포천시에서 지역 공동체 활성화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라는 평가가 이 맥락에서 의미를 가진다. 다양한 지역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공존하는 포천에서 향우회가 보여주는 것은 다양성이 갈등이 아니라 풍요로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봉사와 교류로 이어지는 향우회
향우회 연합회가 앞으로도 지역 봉사활동과 문화 교류를 통해 포천시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은 향우회의 역할이 내부 결속을 넘어 지역 사회 전체로 확장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향우회가 자신들만의 모임에 머물지 않고 포천 지역 사회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향우회가 포천 시민 전체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방법이다. 호남 출신 시민들의 모임이 포천 전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지역 공동체의 모습이다.
포천연예예술인총연합회의 협찬과 행복을 나누는 사람들의 후원이 이번 행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향우회가 지역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혼자가 아니라 함께라는 것. 이것이 동아줄의 정신이 향우회를 넘어 포천 전체로 확장되는 것이다.
◇ 고향의 정이 만드는 힘
척사대회가 끝나고 향우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다. 포천의 여러 동네로 흩어지는 것. 그러나 오늘 함께 웃고 윷을 던지며 나눈 것들이 그들과 함께 돌아간다.
고향의 정.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는 것이다. 같은 땅에서 태어났다는 것, 같은 말투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같은 음식의 맛을 기억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만드는 연결감이 고향의 정이다.
이 정이 포천에서 살아가는 힘이 된다.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이것이 향우회가 개인에게 주는 가장 소중한 것이다.
지푸라기가 모여 동아줄이 되는 날. 그날이 척사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그리고 그 동아줄이 포천이라는 땅에서 더 단단하게 꼬여가기를 바란다. 천년의 긍지를 가진 호남 향우들이 포천에서 새로운 천년을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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