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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문화원 선거를 둘러싼 잡음, 포천의 거버넌스를 되묻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6.25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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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문화원.JPG


포천문화원 차기 원장 선출을 앞두고 최근 불거진 현직 원장의 특정 인사 지지 발언 논란은 단순한 내부 갈등으로만 넘기기 어렵다. 겉으로는 한 기관의 선거를 둘러싼 잡음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문제는 지역 문화기관의 자율성과 공공성, 그리고 포천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리더십을 승계하고 공동체의 신뢰를 유지할 것인가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문화원은 일반 사조직과 다르다. 지역의 향토사와 생활문화, 문화유산의 기억을 모으고 보존하며, 세대와 세대를 잇는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상징적 기관이다. 법적 지위나 운영 형식과 별개로, 지역사회는 문화원을 사실상 공공적 책무를 지닌 기관으로 인식한다. 그런 만큼 문화원장 선출 과정 역시 단순한 내부 인사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신뢰와 품격이 걸린 절차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현직 원장이 차기 원장과 관련해 특정 인사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지지 의사를 밝힌 일이 사실이라면, 그 자체로 상당한 부적절성을 안고 있다. 현직 수장이 재출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것과, 후임으로 누가 적절한지를 공개적으로 제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개인의 거취 표명일 수 있지만, 후자는 선출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사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발언이 언론 인터뷰나 공식 석상에서 반복됐다면, 구성원들에게 미치는 압박감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쟁점은 절차의 공정성이다. 문화원장 선거가 이미 시작도 되기 전에 ‘후임은 이 사람’이라는 식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면, 다른 후보군은 출발선부터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는 선거의 형식이 살아 있다 해도 실질적 경쟁과 자유로운 의사 형성이 어려워질 수 있음을 뜻한다. 지역사회에서 상징성과 영향력을 가진 현직 원장의 한마디는 단순한 사견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 말은 때로 신호가 되고, 압력이 되고, 질서로 받아들여진다.


바로 여기서 행정과 문화 거버넌스의 문제가 드러난다. 지역의 문화기관은 이름만 민간이라고 해서 온전히 사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각종 보조금, 사업 연계, 행정 협조, 시설 지원,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사실상 공공영역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이 때문에 문화기관의 내부 운영이 불투명하거나 특정인 중심으로 굳어질 경우, 그 파장은 기관 내부를 넘어 지역 문화행정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신뢰가 무너지면 사업의 정당성도 흔들리고, 구성원 간 갈등은 지역 문화생태계 전체의 피로로 전이된다.


포천은 지금 지역의 정주 여건을 높이고, 향토 자산을 재정비하며, 문화적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시점일수록 대표적 문화 거점 기관은 안정성과 공공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 문화원이 내부 승계 논란이나 편가르기 구도에 휘말린다면, 시민들은 문화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불신을 가질 수 있다. 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자산이지만, 신뢰가 무너졌을 때 입는 타격은 어떤 시설 투자보다 크다.


사실 지역사회에서 이런 문제는 낯설지 않다. 공공성이 강한 민간기관에서 흔히 반복되는 병폐 가운데 하나가 ‘절차보다 의중이 앞서는 운영’이다. 누가 적임자인지보다 누가 누구의 뜻을 받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공개적 토론보다 비공식 조율이 더 큰 힘을 갖는 순간, 거버넌스는 급속히 낡아간다. 외형상 갈등 없이 조용히 넘어가는 듯 보여도, 그 안에는 누적된 불만과 체념이 쌓인다. 그리고 그 체증은 어느 순간 더 큰 분열로 돌아온다.


문화기관의 품격은 행사 규모나 건물의 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결국 절차의 수준에서 드러난다. 누가 원장이 되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 그 자리에 오르느냐다. 구성원 다수가 납득할 수 있는 과정, 후보들이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환경, 현직의 영향력이 최대한 절제된 분위기, 그리고 결과 이후에도 공동체가 다시 하나로 묶일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이 갖춰져야 한다. 그래야만 선출 이후의 리더십도 힘을 얻는다.


이번 논란을 단순히 “말 한마디가 부른 오해” 정도로 축소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포천문화원은 스스로의 운영 원칙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 현직 원장의 선거 중립 원칙을 분명히 하고, 후보 등록과 선출 절차를 회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며, 필요하다면 선거관리 기준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 개인의 덕망이나 관행에 기대는 운영은 이제 한계가 분명하다. 제도가 품격을 보증해야 할 때다.


행정 역시 이 문제를 문화원 내부의 일로만 방관해서는 안 된다. 물론 행정이 특정 기관의 인사 문제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 개선, 문화기관 거버넌스의 표준 정립, 보조금 연계 기관의 운영 윤리 강화 등은 충분히 고민할 수 있다. 행정의 역할은 사람을 정하는 데 있지 않지만, 공정한 구조를 촉진하는 데는 분명 책임이 있다.


지역의 문화는 누군가의 소유가 아니다. 한 개인의 영향력이나 한 시기의 관성 위에서 유지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억과 기록, 시민의 참여, 구성원의 신뢰가 함께 쌓여야 비로소 문화기관의 권위가 만들어진다. 그렇기에 문화원의 리더십 승계는 더더욱 명예로워야 한다. 미리 정리된 답안을 확인하는 절차가 아니라, 공동체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다음 리더를 선택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포천문화원 차기 원장 선출은 한 사람을 뽑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포천이 지역 문화의 공공성을 어떤 수준으로 관리할 것인지, 그리고 지역 거버넌스를 얼마나 성숙하게 운영할 것인지 보여주는 시험대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정인을 둘러싼 유불리 계산이 아니라, 절차를 바로 세우려는 집단적 의지다. 문화원의 명예는 결국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서 지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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