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주민참여예산, ‘제안 접수’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권한의 실질화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6.25 10:28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 포천시 예산학교가 보여준 방향…행정 설명회에 머물지 않고 지역 의제 형성의 통로로 발전해야

1-2 포천시, 시민과 만드는 예산… 2026년 주민참여예산학교 개최.jpg


포천시가 ‘2026년 주민참여예산학교’를 열고 시민의 예산 참여 확대에 나선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지방재정은 더 이상 행정 내부의 전유물이 아니라, 주민 삶의 질과 도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공적 자원 배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민이 직접 사업을 제안하고 예산 편성 과정에 의견을 내는 주민참여예산제는 지방자치의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해당한다. 시민이 선거 때만 주권자가 아니라, 예산을 통해 일상적으로 시정에 개입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방자치가 가능하다.


이번 예산학교는 그런 점에서 제도 취지를 다시 환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제도의 개요를 설명하고, 예산 항목을 이해하도록 돕고, 소그룹 토의를 통해 생활 현안을 발굴하게 한 구성은 참여의 문턱을 낮추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도로·교통·생활 불편 같은 생활밀착형 의제를 중심으로 시민이 직접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구상했다는 점은, 주민참여예산제가 단순한 형식 절차가 아니라 생활 현장과 연결된 제도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주민참여예산제의 성패는 ‘학교를 열었느냐’가 아니라, 그 뒤 시민의 제안이 실제 정책 결정 구조 속에서 얼마나 존중받고 반영되느냐에 달려 있다. 참여를 독려하는 홍보는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참여가 실질적 권한으로 이어지도록 만드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과제다. 접수는 많이 받되 반영은 극히 제한적이거나, 심사 과정이 불투명하거나, 이미 행정이 정해 놓은 방향 안에서만 제안을 수용하는 구조라면 주민참여예산은 민주주의의 확장이 아니라 행정 정당성 보강 수단으로 축소될 위험이 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본래 예산 편성 권한을 둘러싼 인식 전환에서 출발한다. 행정이 예산을 ‘알아서 배분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주민이 지역 문제를 정의하고 우선순위를 제시하며 재정 집행의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로 옮겨가야 한다. 따라서 핵심은 단순히 시민이 아이디어를 내는 데 있지 않다. 어떤 제안이 채택되고 어떤 제안이 배제됐는지,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인지, 사업 타당성과 재정 여건은 어떻게 설명되는지, 탈락한 제안은 어떻게 환류되는지까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그래야 참여는 이벤트가 아니라 권리가 된다.


특히 포천시처럼 도농복합도시의 특성을 가진 지역에서는 주민참여예산의 역할이 더 크다. 생활권마다 요구가 다르고, 중심지와 외곽지역이 체감하는 행정 수요도 다르다. 이럴수록 행정이 일률적 기준으로 사업을 설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로 주민들이 체감하는 불편은 소규모 도로 정비, 대중교통 접근성, 마을 안전, 생활편의시설 개선 같은 생활 단위에서 먼저 드러난다. 주민참여예산은 바로 이런 미시적 현안을 행정의 예산 언어로 번역해내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주민참여예산은 단순한 예산 제안 제도가 아니라, 지역 불균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읽어내는 현장형 거버넌스 장치다.


그렇다고 주민참여예산이 생활 민원 처리 창구에만 머물러서도 곤란하다. 물론 생활밀착형 사업은 체감도가 높고 주민 만족도도 크다. 그러나 제도의 성숙을 위해서는 이를 넘어 중장기 지역 과제와 연결하는 시야도 필요하다. 정주 여건 개선, 저출생 대응, 교통 약자 이동권, 문화·복지 접근성, 농촌과 도심 간 생활 격차 완화 같은 보다 구조적인 의제가 주민참여예산 안에서 다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민참여예산이 ‘소규모 불편 해소 사업’의 모음집을 넘어, 도시의 미래 방향을 함께 설계하는 공론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행정의 역할은 단순한 접수 창구 운영이 아니다. 주민이 좋은 제안을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사업 구체화 과정에서 실무 지원을 하며, 제안이 단발성 민원에 그치지 않도록 정책적 맥락을 연결해 주는 중간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예산학교 역시 제도 설명 중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사례 분석, 우선순위 설정 방식, 사업 타당성 검토 과정, 반영·미반영 사유에 대한 이해까지 확장될 필요가 있다. 시민이 제안만 하는 참여자가 아니라, 재정 구조를 이해하는 협치의 주체로 성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뢰다. 주민참여예산은 결과만큼 과정의 신뢰가 중요하다. 참여한 시민들이 “의견을 냈지만 결국 달라진 것은 없었다”고 느끼는 순간, 제도는 급속히 형식화된다. 반대로 제안이 일부만 반영되더라도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고, 심사 기준이 일관되며, 다음 해 참여로 이어질 수 있는 피드백 구조가 살아 있다면 제도는 점차 뿌리내린다. 결국 주민참여예산의 본질은 예산 항목 몇 개를 바꾸는 데 있지 않다. 행정과 시민 사이에 신뢰 가능한 협의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포천시가 이번 주민참여예산학교를 계기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할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요한 것은 제안을 얼마나 많이 받느냐가 아니라, 그 제안이 얼마나 공정하게 다뤄지고 실제 시정에 얼마나 의미 있게 연결되느냐다. 참여의 외형보다 참여의 질이 우선되어야 하며, 행사성 교육보다 숙의 구조의 정착이 중요하다. 주민참여예산은 시민을 설득하는 제도가 아니라, 시민과 함께 우선순위를 정하는 제도여야 한다.


지방자치의 수준은 청사 규모나 예산 총액만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이 자기 지역의 문제를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이 예산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행정 수단 안에서 얼마나 존중받는지에 달려 있다. 그런 의미에서 주민참여예산학교는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목적지는 아니다. 포천시가 진정으로 강화해야 할 것은 제안 접수의 양이 아니라 시민 권한의 실질화다. 예산 민주주의는 설명회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투명한 절차와 신뢰받는 심사, 그리고 실제 반영을 통해 비로소 증명된다.


ⓒ 메트로포천 & metrop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90세 노모가 입혀준 붉은 점퍼 소통과 효심으로 그리는 포천의 미래
  • 가평 ‘상동터널’ 건립 사업, 행안부 중투심 통과. ‘사업 추진 가속도’
  • 국민의힘, 포천 시의원 선거 ‘위기론’ 확산... 승부수는 ‘필승 전략공천’
  • 임종훈 포천시의장, '험로' 무소속 시의원 3선 도전...
  • 가을 정취 물들이는 허브아일랜드 관광객을 위한 음악회 성황
  • 경민고 총동문회 골프팀 SBS골프 고교골프최강전 4강 진출 쾌거 10월 13일 준결승 격돌
  • 독수리유격대 전몰대원 추모행사 노곡리 전적비서 엄수
  • 옥정 포천 광역철도 대진대역 공사 현장 무법천지
  • (단독)미2사단 한미연합사단 포천서 2026 추석 리셉션 개최 굳건한 한미동맹 다져
  • 도마치계곡 익수 사고 현장서 빛난 포천시 시민안전과의 대응… 군부대 비협조는 뼈아픈 오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기자수첩] 주민참여예산, ‘제안 접수’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권한의 실질화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