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민의 시선] 철원에서 제주까지, 한 청춘이 남긴 25일간의 위대한 기록
기자 생활을 하며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담아왔지만, 이번만큼 가슴 뜨거운 기록은 드물었다. 지난 6월 9일, 한반도의 가장 엄숙한 최전방 철원 땅에서 거대한 첫발을 내디뎠던 청춘이 있다. 군 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갓 전역한 홍주한 군이다. 그의 손에 들린 것은 화려한 여행 가방이 아닌, 오직 자신의 두 발로 국토의 끝과 끝을 잇겠다는 무모하리만치 단단한 결의였다. 그리고, 지난 7월 4일, 장장 25일간의 치열했던 대장정은 마침내 푸른 제주의 품 안에서 위대한 막을 내렸다. 본 기자는 이 청춘이 흘린 땀방울과 눈물, 매 순간 한계를 뛰어넘던 고독한 투쟁의 여정을 가장 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그가 매일 보내온 하루하루의 기록은 단순한 일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써 내려간 한 청춘의 성장 드라마였고, 한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와 맞서 싸운 거룩한 투쟁기였다. 그리고, 그 대장정의 마지막 관문이었던 부산에서 제주로 향하던 날, 홍 군의 여정은 그야말로 숨 막히는 극점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출발을 앞둔 아침, 그동안 누적된 극심한 피로와 공항까지 불과 20km밖에 남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겹쳐 예정보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오전 11시가 훌쩍 넘은 시각. 제주행 비행기 출발 시간은 오후 4시 55분으로, 최소 탑승 20분 전에는 공항에 당도해야 하는 촉박한 상황이었다. 부산의 명물인 밀면이나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하려던 소박한 계획은 사치가 되었다. 밥 한 끼 챙기지 못한 채, 그는 오직 공항이라는 종착지만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설상가상으로 대장정 내내 그를 괴롭히던 발목 통증이 마지막 순간에 다시 발목을 잡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고, 어느새 골반까지 뒤틀려 절뚝거려야만 했다. 그러나 홍 군은 멈추지 않았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지난 24일간 걸어온 길 위의 시간들이 무너질 것만 같았기에, 그는 아픈 발목을 악물며 속도를 돋웠다. 제시간에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지 못할까 봐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는 시간조차 아끼며, 단 한 번의 휴식도 없이 공항을 향해 직진했다.
출발 20분 전, 극적으로 공항 게이트를 통과해 비행기 좌석에 몸을 묻은 홍 군의 눈빛에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정말 끝난 게 맞을까.'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기적 같은 순간을 통과한 청춘의 얼굴에는 대견함과 묘한 감격이 서려 있었다. 기자의 눈에 비친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승리자의 얼굴이었다.
바다를 건너 마침내 고향 제주에 닿았을 때, 공항에서 집까지 남은 마지막 4km는 온전히 그만을 위한 승전 행진곡이었다. 집을 코앞에 두고 하늘에서는 기다렸다는 듯 장대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그러나, 그 비는 차가운 시련이 아니었다. 지난 25일간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타들어 가던 청춘의 고단함을 시원하게 씻어내 주는 하늘의 축복이자 환호였다.
흠뻑 젖은 채 문을 연 집 안은 고요했다. 나이를 먹고, 전역을 하고, 이 거대한 도전을 끝내고 돌아온 날 마주한 적막함 속에서 홍 군은 홀가분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곧이어 걸려온 어머니의 다정한 전화 목소리, 그리고, 캐나다에서 6년간의 긴 유학 생활을 마치고 사흘 전에 막 귀국한 사촌동생과의 극적인 만남까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족발을 가운데 두고 오랜만에 둘러앉은 가족들의 식탁은 화려하진 않았지만 세상 그 어느 성찬보다 따뜻했다. 서로의 무사함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철원에서 제주까지 이어졌던 치열했던 대장정은 비로소 완전한 평온을 찾았다.
본 기자는 홍주한 군의 25일을 동행하며 대한민국 청춘이 가진 위대한 저력을 다시금 목격했다. 그가 걸어온 길은 단순히 지리적인 거리를 이동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하고, 고독을 견디며, 끝내 목표를 이뤄내는 인내의 성전이었다.
이 대장정의 발자국을 칼럼을 통해 매일 함께 걸어주시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홍 군이 길 위에서 얻은 이 단단한 경험은 앞으로 그가 마주할 새로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밑거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아름다운 도전을 멋지게 완수한 홍주한 군에게 메트로포천의 이름으로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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