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영종여객 맨 앞자리, 권신일의 고단하고도 찬란했던 기억의 정거장
권신일 대진대학교 초빙교수
우연은 때로 기억의 가장 깊은 문을 두드린다.
최근 지역의 권오민씨 상가에서 차를 마시다, 옆 테이블의 대화에 귀가 번쩍 뜨였다. '영종여객'. 지금은 '선진여객'으로 이름이 바뀐, 한 사람의 유년 시절 전부와도 같았던 단어가 그들의 대화 속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7, 80년대 그의 아버지가 몸담았던 바로 그 회사에서 함께 땀 흘렸을지도 모를 동료들이었다. 이 우연한 만남은 권신일 전 코레일관광개발 대표의 대여섯 살 눈부셨던 그 시절 기억의 시계바늘을 빠르게 되감아 놓았다.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영종여객 시내버스를 운전하셨다.
어머니는 간혹 어린 권신일의 손에 아버지의 여벌 속옷과 옷가지를 보따리처럼 싸서 들려 보내곤 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 심부름이 마냥 좋았던 기억이 선하다. 정류장에 서서 저 멀리 아버지가 운전하는 큰 버스가 다가올 때, 운전석 창문 너머로 자식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으시던 아버지의 얼굴은 세상 그 어떤 영웅보다 눈부셨다.
아버지는 결코 자식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오늘은 혼자 나왔어? 타라!" 하시며 버스 맨 앞자리에 앉히셨다. 당시의 버스는 지금과 달리 맨 앞 문이 없던 시절이라 운전석 바로 옆에 귀한 1인석 자리가 있었다. 그곳에 앉아 커다란 앞창문으로 펼쳐지는 세상을 바라보면, 마치 공중에 둥둥 떠서 날아가는 듯한 설렘이 온몸을 감쌌다. 커다란 운전대를 잡고 당당하게 도로를 누비던 아버지의 옆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듯 벅찼던 시절이었다. 어머니가 옷가지를 챙겨주시는 날은,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오래 탈 수 있다는 기대감에 온종일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그 아름다웠던 기억 뒤편에 숨겨진 가슴 시린 진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옆 테이블의 옛 영종여객 관계자는 당시의 혹독했던 근무 환경을 덤덤히 털어놓았다. 그 시절엔 휴식 체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밀려드는 손님 때문에 일주일을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운전대를 잡아야 했고, 버스 한 대에 무려 150명에 달하는 승객을 빽빽하게 태우고 다녔다는 이야기였다.
그제야 막연했던 의문이 풀렸다. 매일 노선에 따라 움직이는 시내버스 운전기사에게 왜 어머니가 옷보따리를 챙겨 보내야 했는지, 왜 아버지는 그토록 집에서 보기 힘들었는지 말이다. 대여섯 살 아들의 눈에는 거대한 고래를 모는 선장처럼 멋져 보였던 아버지가, 사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주일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치열한 사투를 벌이던 30대 가장의 고단한 눈물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그가 아버지의 나이를 부쩍 지나 그 시절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니, 비로소 자식을 향한 그 먹먹한 마음들이 온전히 읽힌다. 일주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해 온몸이 부서질 듯 피로했을 30대의 아버지가, 정류장에 덩그러니 서 있는 대여섯 살 어린 아들을 발견했을 때의 그 반가움과 미안함은 얼마나 컸을까. 간혹이지만 그 어린 자식에게 혼자 길을 나서라며 옷보따리를 쥐여주던 어머니의 심정은 또 어땠을까. 한 살, 서너 살 박이 더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 발이 묶여, 멀어져 가는 큰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였을 어머니의 걱정 어린 시선이 이제야 가슴을 저미듯 다가온다.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이처럼 젊은 날 부모님이 감내해야 했던 고생의 무게를 잊거나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우연히 마주친 그 시절의 파편들이 가슴속 깊이 묻어둔 부모님의 사랑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평소 눈물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님에도, 그 시절 운전석 창문 너머로 환하게 웃던 아버지의 얼굴과 어머니의 조바심 섞인 눈빛이 겹쳐지며 권 전 대표는 자신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한다.
오늘 밤,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 실은 부모님의 치열했던 청춘과 맞바꾼 선물이었음을 새삼 느낀다. 자식을 위해 기꺼이 삶의 무게를 짊어졌던 세상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고단했던 젊은 날에, 깊은 존경과 가슴 먹먹한 감사를 바친다.
[영종여객의 발자취] 경기 북부 서민들과 함께 달린 대중교통의 산증인
이제는 사명마저 바뀐 '영종여객'의 지도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본다. 영종여객은 본래 인천 영종도를 기반으로 출발했으나, 경기 북부 지역의 대중교통 확충과 맞물려 포천을 비롯한 연천, 철원 주민들의 가장 든든한 발이 되어주었던 유서 깊은 향토 버스 회사다.
특히 1970년대와 80년대 교통 인프라가 극도로 열악했던 시절, 영종여객은 포천과 서울 동대문(시외버스 터미널) 및 수유리를 잇는 직행버스와 완행버스를 대거 운행하며 지역의 대동맥 역할을 해냈다. 당시 포천 주민들이 서울로 출퇴근을 하거나 통학을 할 때, 혹은 농산물을 내다 팔러 갈 때 이용하던 버스는 십중팔구 영종여객이었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달리던 그 시절, 영종여객의 붉고 푸른 버스들은 지역 경제와 주민들의 삶을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전후로 맞이한 경영난과 여객 운송 시장의 격변 속에서 영종여객은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직면했다. 철원과 연천 등 일부 노선이 경기고속이나 평안운수 등 인근 지역 시외버스 업체들로 분할 및 인수되는 과정을 겪었고, 마침내 2,000년대 초반 대규모 교통망을 구축하던 선진그룹에 흡수되면서 지금의 '선진여객'으로 사명이 변경되기에 이르렀다. 사명은 바뀌었지만 그들이 닦아놓은 포천의 버스 노선망은 여전히 지역 대중교통의 근간으로 남아있다.
비록 시간의 흐름 속에 '영종여객'이라는 옛 이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지라도, 그 기록의 한 페이지에는 서민들의 애환과 지역의 발전사, 그리고 무엇보다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자식을 향해 운전석 창문 너머로 환하게 웃어주던 우리 부모님들의 거룩한 땀방울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그 시절 영종여객이 실어 나른 것은 승객만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들의 치열하고도 위대한 청춘 그 자체였음을 우리는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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