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산은 지역경제의 기반이지만, 동시에 지역사회의 갈등이 가장 첨예하게 드러나는 현장이기도 하다. 농가에는 생업이지만, 주민에게는 악취와 오염의 기억으로 남는다. 기후위기 시대에 들어서는 문제는 더 복잡해졌다. 이제 가축분뇨는 단지 처리의 대상이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과 자원순환이라는 더 큰 과제 속에서 다시 다뤄져야 한다. 포천시가 142억 원 규모의 ‘저탄소 축산혁신’ 사업에 시동을 걸고 가축분뇨 처리와 온실가스 감축계획 수립 연구에 착수한 것은 이런 시대적 압박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읽힌다.
포천시는 지난 16일 시청 시정회의실에서 축산단체와 유관기관, 주민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포천시 가축분뇨 처리와 온실가스 감축계획 수립 연구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이번 연구는 농림축산식품부의 ‘저탄소 축산혁신지구 시범 공모사업’ 선정에 따른 1년 차 필수 과제로, 아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이 내년 1월까지 7개월간 수행한다. 표면적으로는 행정 절차의 출발점이지만, 실제로는 포천시가 축산 환경 문제를 기존의 민원 대응 수준이 아니라 구조적 전환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분명하다.
가축분뇨를 어떻게 덜 불편하게 처리할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자원으로 바꾸고 탄소 감축의 경로로 연결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포천시는 관내에서 발생하는 우분을 고체연료로 전환해 ㈜지에스포천그린에너지의 발전시설에 유연탄 대체 연료로 공급하는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분뇨를 비용과 민원의 대상으로만 두지 않고, 에너지 체계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폐기물 처리와 연료 전환, 악취 저감과 온실가스 감축을 하나의 틀 안에서 묶어보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구상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친환경’이라는 수사를 붙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많은 지자체가 축산 악취 문제를 사후적 민원 관리로 접근해 왔다면, 포천은 이번 연구를 통해 수거·운반·처리·활용 전 과정의 경제성과 감축 효과를 정량화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축분뇨 발생량에 따른 정밀 처리계획, 온실가스 감축량 산정, 고체연료화 시설 운영의 경제성 분석, 양돈농가 저장조 실태조사와 수거 노선 최적화, 고착 슬러지 제거를 위한 표준작업절차 수립까지 과업이 세분화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악취를 줄이겠다는 선언보다,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를 수치와 절차로 만들겠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고착 슬러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점이다.
축산 악취는 흔히 막연한 불쾌감의 문제로만 언급되지만, 현장에서는 저장조 내부에 쌓인 슬러지가 오랜 기간 악취의 핵심 원인으로 작동해 왔다. 그럼에도 이 문제는 손이 많이 가고 비용이 들며 표준화가 어려워 종종 뒤로 밀려나곤 했다. 포천시가 이를 표준작업절차로 정리하겠다고 나선 것은 행정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차원을 넘어, 악취 문제를 보다 실질적이고 현장적인 방식으로 다뤄보겠다는 의미를 가진다. 환경 갈등은 결국 디테일에서 해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사업은 늘 기대와 한계를 함께 안고 간다.
우분 고체연료화가 과연 경제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지, 수거와 운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연료 품질의 안정성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는지, 발전시설과의 연계가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구조인지 등은 모두 검증이 필요한 문제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 역시 계산 방식과 적용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용역이 정말 중요한 이유는 성공을 미리 선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공 가능성과 한계를 냉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다. 정책은 의지가 아니라 검증으로 완성된다.
포천시가 이 사업을 인구정책과 정주 여건 개선 기조와 연결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축산 환경 문제는 흔히 농업 분야의 과제로만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주민 생활의 질과 직결된다. 악취와 오염, 처리 불안이 지속되면 농촌 지역의 거주 만족도는 낮아지고, 이는 곧 인구 이탈과 지역 활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포천처럼 도농복합도시의 성격을 가진 지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결국 인구정책은 단순히 외부 인구를 끌어오는 경쟁이 아니라, 지금 사는 사람들의 생활 환경을 얼마나 견딜 만하게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축산 악취를 줄이고 환경 부담을 덜어내는 일이 정주정책의 기초 체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사업을 마냥 낙관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대형 환경 프로젝트는 종종 ‘미래 비전’이라는 이름 아래 과잉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정작 현장에서는 행정 절차와 예산, 주민 수용성, 운영 비용 문제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가 연구로 끝나지 않는 일이다. 보고서가 쌓이고 수치가 정리되는 것만으로는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 농가의 참여를 끌어내고, 시설 운영 주체의 책임을 분명히 하며,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야 비로소 정책의 의미가 생긴다. 축산 환경 개선은 결국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실행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번 포천시의 시도는 그럼에도 평가할 만하다.
적어도 가축분뇨를 더 이상 미루고 숨길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계산하고 제도적으로 관리해야 할 공적 과제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그렇다. 축산의 지속 가능성은 생산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환경 부담의 수준, 기후위기 속에서 요구되는 감축 책임, 농가가 실제로 견딜 수 있는 비용 구조가 함께 맞물려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연구용역은 ‘축산을 계속할 수 있는 조건’을 다시 설계하는 작업에 가깝다.
백영현 포천시장이 “기후위기 대응과 축산 악취 저감은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말한 것은 틀리지 않다.
다만 그 말이 무게를 가지려면, 이번 연구가 선언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현장을 바꾸는 계획으로 이어져야 한다. 우분 고체연료화의 경제성은 냉정하게 따져야 하고, 악취 저감 효과는 주민이 체감하는 수준으로 입증돼야 하며, 온실가스 감축은 숫자만이 아니라 운영의 지속성으로 확인돼야 한다.
축산의 미래는 이제 생산량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얼마나 덜 오염시키는가, 얼마나 덜 갈등을 만드는가, 얼마나 자원을 순환시키는가가 함께 묻힌다. 포천시가 시작한 이번 실험은 바로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중요한 것은 사업의 규모가 아니라, 이 사업이 정말 농가의 부담을 덜고 주민의 불편을 줄이며 기후위기 대응의 실질적 모델이 될 수 있느냐다. 포천이 저탄소 축산혁신지구의 ‘표준’을 말하려면, 먼저 현장에서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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