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고령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단지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일이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사람들이 얼마나 덜 외롭게, 얼마나 더 존중받으며, 얼마나 공동체 안에 연결된 채 나이 들어갈 수 있는가에 있다. 오래 사는 것과 잘 늙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특히 농촌성과 도시성이 겹쳐 있는 도농복합지역에서는 고령층의 고립이 더 쉽게 일상화될 수 있다. 자녀와 떨어져 살거나 이동이 불편하고, 이웃과의 접촉이 줄어드는 순간 노년의 삶은 생각보다 빠르게 위축된다. 포천시 선단동 주민자치회가 85세 이상 어르신들을 위한 ‘장수 상차림’ 사업을 시작한 일은 그래서 단순한 경로행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노인을 돌봄의 대상으로만 두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직접 안부를 묻고 존재를 기념하는 방식으로 다가섰다는 점에서 그렇다.
선단동 주민자치회는 지난 15일 동교1통 경로당에서 85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장수 상차림 사업을 열었다. 노래자랑과 장수 기원 사진 촬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고, 주민자치회는 이번 행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관내 여러 경로당으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겉으로만 보면 훈훈한 지역 행사다. 하지만 이런 자리를 너무 쉽게 ‘미담’으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초고령화 시대의 주민자치는 바로 이런 생활 현장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지역의 고립을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 사업의 핵심은 ‘85세 이상’이라는 대상 설정에 있다.
이 연령대는 단순히 고령층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기 어려운, 더욱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세대다. 건강 문제와 이동 제약, 사회적 관계의 축소, 배우자 사별 이후의 고독이 한꺼번에 겹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이들을 위한 사업은 복지적 필요가 큰 동시에 상징적 의미도 크다. 공동체가 가장 연세 많은 주민들을 먼저 기억하고 예우하는 태도는, 결국 이 지역이 누구를 중심에 두고 운영되는가를 보여주는 신호이기도 하다.
장수 상차림이라는 이름도 의미심장하다.
노년을 단지 관리와 보호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대신, 삶의 지속과 축적을 축하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의 식사나 행사로 노인의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어르신의 삶을 기리고, 함께 웃고, 사진을 남기고, 노래를 나누는 경험은 생각보다 크다. 그것은 “당신은 이 지역에서 잊히지 않은 사람”이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립은 물질적 빈곤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감각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장수 상차림은 단순한 대접이 아니라 관계의 복원 행위에 가깝다.
이런 주민자치 사업이 포천시의 고령화 대응과 정주 여건 개선 흐름 속에서 해석되는 것도 자연스럽다.
지방도시의 인구정책은 더 이상 청년 유입만 이야기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이미 지역의 중요한 다수를 이루는 고령층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 역시 핵심 과제다. 특히 도농복합도시에서는 초고령층의 생활 반경이 매우 좁아지는 경우가 많고, 일상적인 안부 확인조차 제때 이뤄지지 않는 일이 생기기 쉽다. 이때 주민자치회와 경로당 같은 생활 단위의 공동체 조직은 행정이 다 채울 수 없는 빈틈을 메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정주 여건은 결국 아파트 신축이나 도로 정비뿐 아니라, 가장 나이 많은 주민이 얼마나 덜 외롭게 지낼 수 있느냐에 의해서도 결정된다.
다만 이런 행사가 진짜 힘을 가지려면 몇 가지를 더 고민해야 한다.
첫째, 장수 상차림이 단발성 행사로 머물지 않아야 한다.
한 번의 기념행사보다 중요한 것은 이후에도 관계가 이어지는가다. 행사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건강 상태, 생활 여건, 정서적 고립 정도를 어떻게 계속 살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둘째, 축하의 형식과 복지의 실질이 연결돼야 한다.
웃고 즐기는 시간은 필요하지만, 그 자리에서 독거 여부, 돌봄 공백, 병원 접근성, 식사 곤란 같은 문제가 함께 드러날 수 있다. 그렇다면 행사는 복지 발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셋째, 주민자치와 행정복지센터의 역할 분담이 더 촘촘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현장성과 관계망을, 행정은 제도 연결과 지속 관리를 맡는 식의 협업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좋은 뜻이 실제 생활 개선으로 이어진다.
선단동 주민자치회가 앞으로 경로당 순회 방식으로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점은 그래서 중요하다.
복지는 대상이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방식보다, 생활 현장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식일 때 더 많은 것을 발견한다. 경로당은 단순한 여가 공간이 아니라 지역 노년층의 건강과 관계, 생활 정보를 가장 가까이서 파악할 수 있는 접점이기도 하다. 이 공간을 통해 어르신들의 삶을 주기적으로 살피고, 필요하면 추가 지원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장수 상차림은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최유정 주민자치회장이 “기쁜 마음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니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한 대목은 소박하지만 본질적이다.
노년 복지에서 기쁨은 사치가 아니다. 즐거움과 환대, 인정받는 경험은 삶의 질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종종 노인복지를 생계와 돌봄의 문제로만 좁게 이해하지만, 실제로는 존엄과 관계, 즐거움의 문제까지 포함해야 한다. 잘 돌보는 것과 잘 모시는 것은 다르고, 잘 모신다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의 삶을 기쁜 마음으로 기억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계향 선단동장이 행정복지센터 차원의 지원을 약속하고, 실거주 고령층 현황 파악과 복지 사각지대 점검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도 의미가 있다.
행사는 공동체의 온기를 보여주고, 행정은 그 온기가 지속될 수 있도록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연결이다. 경로당의 웃음이 복지 데이터와 만날 때, 주민의 안부가 행정의 지원과 이어질 때, 노년의 고립은 조금 더 줄어들 수 있다.
결국 장수 상차림의 진짜 의미는 한 끼를 차리는 데만 있지 않다.
그것은 누가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불려야 하는 사람인지, 공동체가 누구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에 가깝다. 오래 사는 어르신을 축하하는 일은 단순한 예우가 아니라, 지역이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존중하는지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포천시 선단동의 이번 사업은 그런 점에서 묻는다.
초고령화 시대의 공동체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거창하지 않을 수 있다. 먼저 안부를 묻고, 함께 밥상을 차리고, 얼굴을 기억하고, 필요한 지원으로 연결하는 것. 오래 사는 사회를 넘어, 외롭지 않게 나이 들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해 필요한 출발은 어쩌면 바로 이런 자리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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