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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천은 흘러가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주민이 머무는 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7.21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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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날 현장을 찾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럼에도 군내면 주민자치회와 ‘걷고 싶은 구읍천 산책로 만들기’ 주민협의체 위원 15명이 빗속에서 경안천 벤치마킹에 나선 것은, 수변공간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답이 책상 위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천 정비는 흔히 치수와 재해 예방의 문제로만 다뤄지기 쉽지만, 오늘날 주민들이 하천에 기대하는 역할은 그보다 훨씬 넓다. 안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걷고 싶고, 머물고 싶고, 일상 속에서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군내면 주민들이 용인과 광주의 경안천 현장을 찾아 구읍천의 미래를 그려본 일은 그래서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지역의 생활환경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집단적 상상력의 과정으로 읽힌다.


이번 탐방은 구읍천을 주민 친화형 산책로로 조성하기 위한 실질적 해법을 찾는 자리였다.  

탐방단은 먼저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일대 경안천 둔전리 쉼터와 수변 산책로를 찾아 수변 데크, 포토존 벤치, 경관 조명, 그늘막 쉼터 등 다양한 시설을 살폈다. 이어 광주시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으로 이동해 생태 복원과 탐방로 유지·관리 방안, 수질 정화와 휴식 기능이 결합된 공원 구조를 확인했다. 얼핏 보면 다른 지역의 좋은 사례를 둘러본 평범한 벤치마킹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고 왔느냐보다, 그 공간이 왜 주민들에게 사랑받는지를 직접 체감했다는 데 있다.


하천은 오랫동안 ‘관리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홍수를 막고 제방을 정비하며 물길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던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 하천은 단지 물을 흘려보내는 통로로만 남아 있기에는 너무 중요한 생활 공간이 됐다. 도심과 마을을 가로지르는 수변은 주민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공공 자연 공간이자, 산책과 운동, 휴식과 만남이 이뤄지는 일상의 무대가 될 수 있다. 결국 좋은 하천 정비는 재해 예방과 생활환경 개선을 따로 보지 않고 함께 설계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군내면이 주목한 지점도 바로 거기에 있는 듯하다.  

탐방단이 초승달과 별 모양의 포토존 벤치나 대형 경관 조명 같은 경관 요소만 본 것이 아니라, 데크 진입로의 경사도와 안전 난간, 교량 상부 가드, 미끄럼 방지 바닥재 같은 세부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살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주민이 실제로 이용하는 공간은 보기 좋다고 해서 좋은 공간이 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비가 와도 미끄럽지 않아야 하며, 아이와 노인도 안심하고 걸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걷고 싶은 길’은 아름다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안전과 편의가 받쳐줄 때 비로소 일상적인 산책로가 된다.


광주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에서 확인한 생태 복원 모델 또한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오늘날 수변공간은 단순한 토목 정비를 넘어 생태와 휴식이 공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부들과 창포 같은 수변 식물이 자라고, 습지가 수질 정화 기능을 하며, 그 위를 주민이 탐방로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구조는 하천을 단순한 시설물이 아닌 살아 있는 공간으로 되돌리는 방식이다. 이런 생태형 접근은 주민에게는 더 풍부한 경관과 쉼의 기회를 제공하고, 지역에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더해준다. 하천을 인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쓰는 공간으로 이해하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읍천이 지금까지 치수 중심으로 관리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탐방은 방향 전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재해 예방 기능은 당연히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하천이 그 역할에만 머물면 주민과의 거리는 계속 멀어진다. 물은 흐르지만 사람은 머물지 않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재해 대응과 친수 기능을 균형 있게 결합하면 하천은 마을의 자산이 될 수 있다. 산책로와 쉼터, 조명과 안전시설, 생태 공간이 조화롭게 갖춰질 때 하천은 단순한 기반시설을 넘어 생활문화 공간으로 확장된다. 주민들이 구읍천에 바라는 것도 바로 그런 변화일 것이다.


이런 시도가 정주 여건 개선과 연결된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하다.  

좋은 도시는 거창한 랜드마크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집 가까이에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아이와 어르신이 함께 나와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는지, 주민들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일상을 보낼 수 있는 수변이 있는지가 삶의 만족도를 크게 좌우한다. 특히 지방도시와 읍면 지역에서는 이런 생활밀착형 공공공간의 질이 지역에 대한 애착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구읍천이 단순한 하천에서 주민의 일상 동선 속 산책 명소로 바뀐다면, 그 변화는 생각보다 더 크고 오래 남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탐방의 의미는 주민이 스스로 공간의 미래를 고민했다는 데 있다.  

행정이 계획을 세우고 주민은 결과를 받아보는 방식이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다른 지역을 보고 비교하며 “우리 마을에는 어떤 길이 필요할까”를 묻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공공공간은 결국 그곳을 쓰는 사람의 감각이 반영될 때 더 오래 사랑받는다. 주민이 현장에서 느낀 불편함과 장점, 실제 이용 동선에 대한 통찰은 외부 전문가의 설계 못지않게 값질 수 있다. 이번처럼 주민 의견과 현장 관찰을 함께 축적하는 과정은 공간 조성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벤치마킹이 곧바로 성공적인 조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지역의 좋은 시설을 단순히 옮겨오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 구읍천의 수량, 하폭, 주변 주거 환경, 이용 연령층, 유지관리 여건 등 지역적 특성을 면밀히 따져야 한다. 포토존이나 조명 같은 눈에 띄는 시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이용 빈도와 안전성, 유지 비용일 수도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가 좋더라’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례를 바탕으로 구읍천에 맞는 해법을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빗속 현장 탐방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좋은 산책로는 책상 위 도면만으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직접 걸어보고, 미끄러움도 느껴보고, 쉼터의 위치와 조명의 밝기, 난간의 높이까지 살펴봐야 비로소 사람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번 15인 탐방단의 발걸음은 작지만 실질적인 출발점이라 할 만하다.


하천은 흘러가기만 하는 공간이 아니다.  

주민이 걷고, 쉬고, 소통하며 다시 마을과 연결되는 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군내면 주민자치회가 경안천에서 찾아온 아이디어들이 구읍천의 지역적 특성과 잘 맞물린다면, 구읍천은 단순한 정비 대상이 아니라 군내면의 생활 품격을 높이는 수변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좋은 길은 멀리 있는 명소를 닮는 데서가 아니라, 우리 동네 사람들이 정말 걷고 싶어 하는 길을 만드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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