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로그인을 하시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자수첩] 공을 치는 일이 기억을 지키는 일이 될 때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7.23 23:43
  • 댓글 0
  • 글자크기설정

3 포천시보건소 치매안심센터, 어르신 대상 파크골프 치매 예방 프로그램 대상자 모집.jpg


치매 예방이라고 하면 많은 이들이 먼저 병원, 검사, 약물, 혹은 딱딱한 보건 교육을 떠올린다. 그러나 포천시가 내놓은 ‘파크골프 치매 예방 프로그램’ 소식은 그 익숙한 상식을 조금 다르게 비튼다. 기억을 지키는 일이 반드시 무거운 표정으로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건강한 노후를 위한 공공정책이 얼마든지 즐겁고 생활 밀착적인 방식으로 설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공 하나와 클럽 하나로 시작하는 이 작은 운동이, 사실은 고령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인 치매 예방과 사회적 고립 해소를 함께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프로그램은 꽤 영리한 행정의 사례로 읽힌다.


파크골프는 요즘 고령층 사이에서 가장 친숙한 생활체육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격렬하지 않으면서도 몸을 꾸준히 움직이게 하고, 규칙은 비교적 단순하지만 집중력은 요구하며, 혼자보다 함께할 때 더 재미있다. 바로 이 지점이 중요하다. 치매 예방은 단순히 머리만 쓰는 훈련이나 몸만 움직이는 운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신체 활동, 인지 자극, 사회적 교류가 함께 이루어질 때 훨씬 효과적인 예방 환경이 만들어진다. 파크골프는 이 세 요소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묶어내는 드문 종목이다. 공의 방향을 읽고, 차례를 기다리고, 규칙을 기억하고, 동료와 대화를 나누는 그 모든 과정이 사실은 몸과 뇌, 관계를 동시에 움직이게 한다.


포천시보건소 치매안심센터가 이번 프로그램을 실내 스크린과 실외 구장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설계한 것도 눈길을 끈다. 단순히 “운동합시다”라고 말하는 수준이 아니라, 교육의 접근성과 흥미, 계절과 환경의 변수까지 고려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실내에서는 기초 자세와 규칙을 보다 안정적으로 익히고, 실외에서는 실제 라운딩을 통해 성취감과 현장감을 높일 수 있다. 초보 어르신에게는 문턱을 낮추고, 익숙해진 참가자에게는 자신감을 높이는 구조다. 공공 프로그램은 종종 좋은 취지를 가졌음에도 참여자의 눈높이를 놓쳐 형식적인 운영에 그치곤 하는데, 이번 사업은 적어도 설계 면에서 생활체육의 장점을 꽤 세심하게 붙잡고 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이 반가운 이유는 치매 예방을 ‘질병 관리’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매는 어느 날 갑자기 개인에게만 닥치는 문제가 아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역사회 전체가 함께 준비해야 할 생활의 과제다. 그렇다면 예방 역시 병의 징후만 좇는 방식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일상 속에서 더 많이 움직이고, 더 자주 만나고, 더 즐겁게 시간을 보내도록 돕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파크골프는 바로 그런 생활형 예방 모델에 가깝다. 부담이 적고, 반복 가능하며, 무엇보다 “재미있어서 다시 가고 싶다”는 동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공공정책이 오래가려면 의무감보다 즐거움을 붙들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의 또 다른 의미는 ‘정서적 고립’이라는 보이지 않는 위험을 다루고 있다는 데 있다. 고령층의 건강 문제는 신체 질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대화 상대가 줄어들고, 바깥 활동이 뜸해질수록 우울감과 무기력은 깊어진다. 그리고 이러한 고립은 인지 저하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어르신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함께 배우고, 서로 응원하고, 작은 경쟁과 웃음을 나누는 장면은 단순한 운동 교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지역사회가 “당신은 아직도 충분히 움직일 수 있고, 함께할 수 있으며, 환영받고 있다”고 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사실 고령친화 정책의 수준은 거창한 선언보다 이런 세심한 프로그램에서 드러난다. 어르신 복지를 말하는 도시는 많지만, 정작 어르신이 실제로 참여하고 싶어지는 프로그램을 얼마나 만들고 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건강 강좌를 여는 것과 건강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다르다. 시설을 짓는 것과 그 안에 사람의 발길이 이어지게 하는 것은 다르다. 그런 점에서 포천시의 이번 시도는 보건과 체육, 예방과 관계, 실내 교육과 야외 활동을 연결한 비교적 입체적인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이런 프로그램이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몇 가지가 더 필요하다. 참가자의 지속 참여를 이끌 후속 모임, 초급 이후 단계별 과정, 지역 내 파크골프 인프라와의 연계, 치매안심센터의 다른 인지강화 프로그램과의 접목 등이 함께 이어져야 한다. 8회 교육이 마중물이 되려면, 그 이후에도 어르신들이 스스로 운동을 이어가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예방은 짧은 이벤트가 아니라 습관의 형성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프로그램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치매 친화적 지역사회란 단지 진단과 돌봄 체계가 잘 갖춰진 곳만을 뜻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앞서, 사람들이 덜 아프게 늙고, 덜 외롭게 나이 들며, 더 즐겁게 일상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도시가 진짜 치매 친화적 도시다. 포천시가 말하는 ‘치매가 있어도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는 지역사회’ 역시 결국은 예방과 존중, 참여와 연결의 언어 위에서 완성될 것이다.


공을 치는 일은 얼핏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그것은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가 되고, 잊고 있던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며, 기억을 붙드는 훈련이 될 수 있다. 클럽을 쥔 손끝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몸을 깨우고, 뇌를 자극하고, 사람을 사람 곁으로 데려다 놓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포천의 파크골프 치매 예방 프로그램은 바로 그 가능성을 보여준다.


건강한 노후는 병이 없는 상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함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노후는 삶다운 얼굴을 갖는다. 포천시의 이번 시도가 어르신들의 하루를 조금 더 가볍고,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 메트로포천 & metropc.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전체댓글 0

추천뉴스

  • 90세 노모가 입혀준 붉은 점퍼 소통과 효심으로 그리는 포천의 미래
  • 가평 ‘상동터널’ 건립 사업, 행안부 중투심 통과. ‘사업 추진 가속도’
  • 국민의힘, 포천 시의원 선거 ‘위기론’ 확산... 승부수는 ‘필승 전략공천’
  • 임종훈 포천시의장, '험로' 무소속 시의원 3선 도전...
  • 가을 정취 물들이는 허브아일랜드 관광객을 위한 음악회 성황
  • 경민고 총동문회 골프팀 SBS골프 고교골프최강전 4강 진출 쾌거 10월 13일 준결승 격돌
  • 독수리유격대 전몰대원 추모행사 노곡리 전적비서 엄수
  • 옥정 포천 광역철도 대진대역 공사 현장 무법천지
  • (단독)미2사단 한미연합사단 포천서 2026 추석 리셉션 개최 굳건한 한미동맹 다져
  • 도마치계곡 익수 사고 현장서 빛난 포천시 시민안전과의 대응… 군부대 비협조는 뼈아픈 오점

포토뉴스

more +

해당 기사 메일 보내기

[기자수첩] 공을 치는 일이 기억을 지키는 일이 될 때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