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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백두대간을 잇는다는 것, 길을 잇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잇는 일이다

  • 양상현 기자
  • 입력 2026.07.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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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바라보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군사분계선으로 보는 시선이 있고, 체제의 차이로 읽는 시선이 있으며, 외교와 안보의 함수로 해석하는 시선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가장 오래된 지도가 가장 미래적인 상상력을 준다. 산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물길이 어디로 흐르는가, 사람들이 어떤 능선을 따라 살아왔는가를 묻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한민족 백두대간 잇기’는 단순한 산행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분단 이후 우리가 잃어버린 감각, 곧 한반도를 하나의 생명체처럼 바라보는 감각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최근 열린 ‘한민족 백두대간 잇기 대토론회’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행사는 남북을 가르는 정치적 장벽 앞에서 거창한 선언만 반복한 자리가 아니라, 오랜 시간 묵묵히 한 길을 걸어온 한 개인의 집념과 이를 학술적으로 성찰한 전문가들의 문제의식, 그리고 지역사회가 함께 보탠 현실적 제안이 만난 자리였다. 특히 20여 년 동안 사비를 들여 사업을 준비해 온 조천행 추진위원장의 행보는, 오늘의 공론장이 얼마나 쉽게 냉소로 기울 수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세상은 늘 “가능하겠느냐”고 묻지만, 역사는 종종 “그럼에도 누가 먼저 준비했는가”에 의해 방향이 바뀌곤 한다. 백두대간은 단지 산줄기의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한민족의 자연사이자 생활사이며, 문화적 기억의 축이다. 남쪽의 산과 북쪽의 산이 본래 하나의 맥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정치적 분단이 결코 자연의 질서까지 완전히 끊어놓지는 못했다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백두대간을 잇는다는 발상은, 단순히 끊어진 등산로를 복원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분단이 끊어놓은 인식의 지형을 다시 연결하자는 요청으로 읽힌다. 이번 토론회에서 포천의 지정학적, 역사적 가치를 강조한 발표도 의미심장하다. 접경의 공간은 오랫동안 긴장과 대치의 전선으로만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접경은 막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의 시작점으로 재해석될 필요가 있다. 포천에서 시작하는 백두대간 잇기가 상징성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변방처럼 여겨졌던 공간이 실은 한반도 평화와 협력의 입구가 될 수 있다는 상상력, 그것이야말로 지역을 살리고 국가적 의제를 확장하는 힘이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남북 관계는 언제든 경색될 수 있고, 민간 교류 역시 제도와 정세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백두대간을 잇는다는 구상 또한 지금 당장 실현 가능성만 따진다면 회의적으로 볼 여지가 적지 않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전환은 현실의 조건이 완벽하게 갖춰진 뒤에 시작되지 않았다. 오히려 조건이 미성숙할 때 먼저 비전을 세우고, 자료를 모으고, 사람을 엮고, 사회적 공감대를 축적하는 과정이 있었기에 어느 날 기회가 왔을 때 움직일 수 있었다. 준비 없는 평화는 없고, 상상 없는 통일도 없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논의가 국가 주도의 거대 담론이 아니라 민간의 언어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의 정책은 정권에 따라 속도와 방향이 달라질 수 있지만, 민간의 지속성은 훨씬 질기고 깊다. 한 사람의 집념, 지역사회의 참여, 학계의 해석, 시민의 공감이 층층이 쌓일 때 비로소 공공의 의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민족 백두대간 잇기’는 아직 완성된 사업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사회적 자산이다.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구상이 단지 북한을 향한 상징 정치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이다. 참석자들이 남한 내 백두대간 비경 구간의 예약제 탐방 등 현실적 활성화 방안을 함께 제안한 것은 중요한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멀리 북을 향한 이상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보존하고 가꾸고 경험할 수 있는 백두대간의 가치부터 되살리자는 것이다. 이는 곧 평화의 담론이 공중에 뜬 구호가 아니라, 생태·관광·교육·지역 발전을 아우르는 생활의 언어로 구체화되어야 함을 일깨운다. 분단의 세월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잇는다’는 말보다 ‘막혀 있다’는 말에 익숙해진다. 하지만 길은 원래 누군가 먼저 믿고 걸을 때 생긴다. 이번 토론회에서 언급된 시구처럼, 산이 막는다고 해서 마음까지 멈출 이유는 없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결론이 아니라, 끊어진 맥을 다시 상상하려는 작은 결심인지도 모른다. 백두대간을 다시 잇는 일은 결국 산줄기를 복원하는 일이 아니라 민족의 기억을 복원하고, 평화의 가능성을 복원하며, 서로를 향한 상상력을 복원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움직임의 진정한 가치는 결과가 언제 오느냐에만 있지 않다. 누군가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놓지 않고 오래 준비해 왔다는 사실, 그리고 그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하나의 희망이다. 한반도의 혈맥은 지도 위에서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의 의지 속에서,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미래를 미리 준비하는 실천 속에서 다시 이어진다. 백두대간을 잇는다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분단의 시대를 오래 살아낸 우리에게, 이제는 단절을 관리하는 지혜만이 아니라 연결을 준비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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