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천 청년 농업인의 ‘현실적 고립’, 제도적 유연성이 농촌의 미래다
- 100분의 대화가 남긴 질문… 청년은 왜 농촌에서조차 ‘버티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


농업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자주 미래를 말한다. 스마트농업,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 식량안보, 지역소멸 극복 같은 거대한 단어들이 뒤따른다. 그러나 정작 농업의 현장에 서면, 그 미래는 종종 너무 멀리 있다. 지난 10일 포천시산림조합에서 열린 박윤국 전 시장과 청년 농업인 간담회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런 간극이었다. 정책은 미래를 말하고 있었지만, 현장은 여전히 생존을 말하고 있었다.
100분 넘게 이어진 대화에서 청년 농업인들이 꺼낸 이야기는 거창한 요구가 아니었다. 농촌을 뒤집어 바꿔달라는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특혜를 달라는 주장도 아니었다. 그들이 호소한 것은 너무도 기본적인 것이었다.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일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억울하게 불법이 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소박한 요구가 오늘의 농정 체계 안에서는 오히려 가장 어려운 일이 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 간담회의 본질이었다.
◇ 스마트팜은 미래산업이라면서, 왜 청년에게는 출입문조차 좁은가
오늘날 스마트팜은 농업의 미래처럼 이야기된다. 실제로 그렇다. 기후 불확실성이 커지고 노동력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데이터와 자동화 기술을 접목한 농업은 선택이 아니라 방향이 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미래의 입구는 청년들에게 좀처럼 열려 있지 않다.
현재의 스마트팜 지원 구조는 대체로 큰 면적, 큰 투자, 큰 자부담을 전제로 한다. 최소 3000평 이상, 자부담 2억5000만 원 이상이라는 기준은 누군가에게는 도전의 조건일 수 있겠지만, 많은 청년들에게는 포기의 이유가 된다. 기술을 배우고 의지를 갖췄다고 해서 곧바로 수억 원의 자본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정책이 미래 농업의 주역으로 청년을 부르면서도, 실제 문턱은 자본력이 있는 사람에게 더 친절한 구조가 되어버린 셈이다.
그래서 현장에서 나온 600평 안팎의 보급형 스마트팜 요구는 단순한 규모 조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청년도 시작할 수 있는 농업”으로 설계를 다시 하라는 요청이다. 큰 성공 사례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작게라도 시작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농업의 미래는 몇몇 대규모 시설이 아니라, 다수의 청년이 진입할 수 있는 구조 위에서 비로소 지속된다.
◇ 제도는 지원을 말하지만, 행정은 종종 진입보다 퇴장을 먼저 가르친다
청년 농업인이 겪는 어려움은 자본 부족에만 머물지 않는다. 더 깊은 문제는 제도가 현실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한다는 데 있다. 예산은 있는데 적기에 쓰지 못하고, 선정은 됐는데 융자는 막히고, 사업은 있으나 실제 현장에서는 접근조차 어려운 일이 반복된다. 지원 정책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 정책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사실은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융자와 예산 배정 구조에서 나타나는 경직성은 청년들에게 치명적이다. 농업은 시기를 놓치면 다시 한 해를 잃는 산업이다. 심는 때와 수확하는 때가 있는 것처럼, 자금도 제때 들어가야 의미가 있다. 그런데 행정의 시간은 현장의 시간보다 늘 느리다. 그 느림은 서류상 문제로 보일지 몰라도, 청년에게는 생계의 문제이자 존속의 문제로 다가온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단지 더 많은 예산이 아니다. 현장에 맞는 속도와 방식으로 예산이 작동하도록 만드는 유연성이다. 농업정책의 성패는 얼마나 크게 짜였느냐보다, 얼마나 제때 현장에 도착하느냐에 달려 있다.
◇ 농촌의 현실은 변했는데, 규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이번 간담회에서 가장 뼈아픈 대목은 청년 농업인들이 스스로를 ‘불법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처럼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스마트팜에 필요한 관제실, 판매를 위한 공간, 체험과 교육을 위한 부속시설이 현실에서는 농업 경영의 일부가 되었음에도, 제도는 여전히 그것을 낯선 것으로 대한다. 농지를 훼손하지 않았는데도 위반으로 판단되고, 생산을 돕기 위한 공간인데도 벌금과 이행강제금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히 규제가 엄격하다는 차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규제는 혁신을 제어하는 수준을 넘어, 결국 성실한 농가를 잠재적 위반자로 만든다. 농업은 더 이상 씨 뿌리고 거두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생산과 유통, 체험, 교육, 치유, 브랜드화가 한 몸처럼 연결되는 복합 산업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법과 행정이 여전히 과거의 단선적 농업만을 기준으로 작동한다면, 새로운 농업은 제도 바깥에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필요한 것은 규제의 무조건적 철폐가 아니다. 현실에 맞는 합리적 재구성이다. 일정 요건 아래 허용하고,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현장의 필요를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의 양성화가 필요하다. 농촌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법이 현실을 훈계하는 데 머무를 것이 아니라, 현실을 품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는 시설 문제가 아니라 농촌 지속성의 문제다
외국인 근로자 숙소 문제도 마찬가지다. 농촌의 인력 구조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외국인 노동력은 이미 보조적 존재가 아니라 필수 인력에 가깝다. 그럼에도 정작 이들이 머물 최소한의 공간은 제도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채 방치돼 왔다. 합법 기준은 모호하고, 현실은 절박하며, 부담은 고스란히 농가가 떠안는다.
이는 단순히 건축 기준의 문제가 아니다. 농업 생산을 유지할 인력이 없으면 농사는 지속될 수 없다. 그 인력이 머물 주거 기반이 불안정하다면, 농촌의 지속 가능성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도시의 관점에서 본 형식적 기준만으로 농촌의 숙소 문제를 판단한다면, 결과는 음성화와 편법, 그리고 농가의 불안정성 확대일 뿐이다.
이제는 외국인 근로자 숙소를 ‘회색지대’에 둘 것이 아니라, 공적 기준 안으로 넣어야 한다. 조례와 지원 체계를 만들고, 현실 가능한 모델을 제시하며, 기초지자체와 중앙정부가 함께 책임을 나눠야 한다. 합법화는 특혜가 아니라 질서 있는 현실화다.
◇ 청년 농업인의 고립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축산 분뇨 처리 비용, 북부권의 저온저장·소포장 시설 부족, 농업용수 확보 문제까지 이어지는 현장 목소리를 듣다 보면, 청년 농업인의 어려움은 결코 개인의 역량 부족에서 비롯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비용,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인프라, 한 사람의 의지로는 바꿀 수 없는 제도 환경이 청년들을 조용히 고립시키고 있다.
가장 위험한 것은 이 고립이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년들은 대개 쉽게 포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더 버텨본다. 더 감당해본다. 더 참고 견뎌본다. 그러나 그렇게 버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농촌은 새로운 인재를 잃는다. 떠나는 청년은 말없이 떠나고, 남은 지역은 나중에야 그 공백의 크기를 실감한다.
그래서 청년 농업인을 위한 정책은 ‘지원’의 언어만으로는 부족하다. 더 정확히는 ‘고립을 줄이는 정책’이어야 한다. 자금의 문턱을 낮추고, 규제의 모순을 걷어내고, 인프라 격차를 줄이며, 실패해도 다시 설 수 있는 제도적 안전망을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청년 농업인이 농촌에서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 농촌의 미래는 청년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으로는 오지 않는다
박윤국 예비후보가 간담회에서 내놓은 스마트팜 지원 확대, 외국인 숙소 합법화 검토, 농업용수 확보, 축산 민원 완화 등의 약속은 바로 이런 현장의 절실함 위에서 나왔다. 중요한 것은 그 약속이 얼마나 화려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실제 제도 변화로 이어지느냐다. 청년 농업인이 체감하는 변화는 대개 거대한 슬로건이 아니라, 작은 허용과 빠른 집행, 명확한 기준, 덜 억울한 행정에서 시작된다.
농촌의 미래를 말하면서 청년에게만 도전과 헌신, 희생을 요구하는 방식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청년이 농업에 들어오길 바란다면, 그들이 버틸 수 있는 구조부터 만들어야 한다. 청년이 돌아오는 농촌은 열정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제도가 사람을 밀어내지 않을 때, 행정이 현실을 따라갈 때, 그리고 지역이 청년의 실패 가능성마저 품을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난 10일 포천에서 오간 100분의 대화는 단순한 민원 청취가 아니었다. 그것은 농촌이 지금 어떤 벽 앞에 서 있는지, 그리고 그 벽을 넘기 위해 무엇부터 바꿔야 하는지를 묻는 시간이었다. 농업의 미래는 거창한 구호 속에 있지 않다. 현장에서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청년이 시작할 수 있게 하고, 일할 수 있게 하고, 떠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 결국 농촌의 미래는 제도적 유연성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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